지하철 5호선 청구역 앞 사거리에서 동대문운동장쪽으로 난 이면도로를 100m남짓 올랐을까. 한 집 걸러 점집에, 네모난 건물 마다 동대문패션타운의 영세 상인들에게 밥줄을 대는 하청공장이 들어앉은 허름한 거리. 희미한 공업용 미싱소리가 귀에 익을 때쯤, 공장벽에 붙은 하얀 종이 한 장이 눈에 들어오는데 내용이 희한하다. '민속예술관 가례헌, 목요 예술의 밤'이란다. 이런 곳에 민속예술관이라고?
"와, 좋다" "속이 시원~하네!"
지난 14일 오후 8시 가례헌의 23회째 정기공연에는 30~50대 남녀 관객 40명 남짓이 멍석에 앉아 신명을 냈다. 한국서도소리연구보존회 회원 임영미씨의 큰북 연주에 엉덩이를 들썩이고 김상현씨의 대금산조에는 넋을 놓았다. 보존회 이사장이자 가례헌 지킴이인 소리꾼 박정욱씨는 서도소리와 판소리, 서편제 동편제를 고루 들려주면서 즉석에서 각각의 창법에 대한 짧지만 해학 넘치는 즉석강의를 펼쳤다.
"아이고 아버지~, 날 볼 날이 몇 날이요"하며 '심청가' 한 대목이 울릴 때는 숨죽이던 분위기가 "저 건너 딱따구리는 없는 구녕도 뚫는데, 우리집 요 못난둥이는 있는 구녕도 못뚫네"라며 '아리랑'의 성인버전(!)을 할 때는 폭소가 터진다. 서편 동편으로 나뉘어 소리대결을 벌이던 한 여성관객은 한껏 흥이 올라 박씨가 "목도 축여야 할건디 그 진주목걸이 팝시다" 하니 넙죽 "네"하며 받는다. 이날은 박씨와 15년 지기라는 인기 성우 성병숙씨가 시낭송을 하기도 했다.
국악애호가들에게 조차 생소한 이름이지만 가례헌은 벌써 23회째 정기 하우스콘서트를 열었다. 2001년 지금의 건물 맞은편에 처음 현판을 달았고 2003년 공연규모가 커지고 소장품이 많아지면서 120평 공간의 지금 공장건물로 확장이전했으니 햇수로 5년째. 음악가가 자신의 집에서 공연을 개최하는 하우스콘서트는 클래식분야에서는 이제 낯설지 않은 공연양식이 됐지만 민속예술쪽에서, 그것도 상설무대로 하우스콘서트를 여는 곳은 아직까지도 이곳이 유일하다.
가례헌을 더 가치있게 만드는 것은 이곳이 단순한 공연장에 머물지않는다는 점이다. 선조들의 생활양식을 직접 체험하고 전통공예의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있는 곳이 가례헌의 목표다. 박씨는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일단 먹어야 하고, 먹고나면 좋은 것도 봐야하니 각종 민속공예품과 예술장인들의 유품을 전시하고, 그러다보면 예쁜 그릇에 향기로운 차도 마셔보고, 하는 식으로 가례헌의 사명이 점점 확대돼왔다"고 설명한다. '소리만이 아닌 전통과 민속의 모든 생활풍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공간'을 통해 전통예술을 알고 제대로 즐기는 인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것이 박씨의 바람이다.
가례헌에서는 관람료는 물론 저녁식사도 무료다. 칠순이 넘은 박씨의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내는 시절음식들이 보기만 해도 소박한 정취가 물씬한 개다리 소반에 받쳐 나온다. 적당히 배를 불리운 사람은 한쪽에 마련된 다례장에서 녹차나 화차를 마신다. 가끔 신명이 더하는 날이면 공연이 파한뒤 즉석 막걸리 판을 벌인다.
가례헌이 소장하고있는 전통 목가구와 생활공예품들을 둘러보는 것은 옛사람들의 생활풍속을 엿볼 수 있는 큰 즐거움이다. 가례헌은 박씨의 소리 스승인 고 김정연(1913-1987) 서도소리 예능보유자의 유품 30여점을 비롯 평양 기성권번 기녀들의 각종 유품을 1,000여점 이상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김정연 선생은 평양 기성권번 출신의 기녀였다.
워낙 유품이 많다보니 한번은 기녀들이 쓰던 양금 가야금 등 악기위주로, 한번은 비녀나 화관 등 장신구 위주로 전시한다. 우리 생활사나 선조들의 예술감성을 더 알아보자는 뜻에서 가끔은 외부 수집가나 미술관 등에서 공예품들을 빌려와 전시하기도 한다. 이번 공연에서는 해주청화백자가 전시됐다.
남편과 함께 이날 처음 공연을 봤다는 오정숙(48ㆍ서울 서초구 서초동)씨는 "가슴속에 잠자고 있던 끼가 살아난 느낌"이라며 눈을 빛냈다.
지난 5월부터 참가, 공연때마다 지인을 한둘씩 데려와 소개할 정도로 가례헌 애호가가 된 한울별(28ㆍ가명ㆍ학원강사)씨는 "관람료도 없고 식사와 차도 무료라 일단 부담이 없다"면서 "형식적이고 경직된 분위기 없이 친구집에 놀러온 것 처럼 자연스럽게 민속예술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라고 말했다.
공연뒤에 전통차를 마시며 객인지 주인인지 모르게 한담을 나누던 관객들은 밤 11시가 넘어서야 삼삼오오 현관을 나섰다. 밖은 희미한 형광등 아래 야근자들이 돌리는 미싱소리로 여전히 웅웅거렸고 시멘트로 대충 발라놓은 층계참은 더 좁고 깊어 보였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들은 다시 현실로 돌아왔지만 꿈으로 난 길을 잊지 않은 듯했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 국악인 박정욱씨, 김정연 선생과 운명적 만남… '소리 인생'으로
몰락한 종가집의 6남매중 막내로 낙동강변에서 자란 소년은 왕복 8km남짓 등하굣길을 늘 혼자 걸어다녔다. 바람에 미루나무가 쓰러지면 소년의 몸도 같이 쓰러졌다. 이따금 소복한 무당이 강에 배를 띄우고 물에 빠져죽은 사람들의 넋을 건지는 굿을 하면 굿소리에 홀려 따라가다 강 하구에 혼자 남겨지곤 했다. 김해평야와 낙동강의 광활한 풍경속에서 소년은 한없이 쓸쓸하고 고독한 기분에 푹 젖었다. 마을 어른들에게 시조를 배우기 시작했다.
가난한 살림에 고교를 중퇴하고 돈 벌겠다며 무작정 올라온 서울, 생계를 위해 새벽 3시면 어김없이 마장동 도축장에서 소 돼지를 잡으면서도 청년은 시조공부를 놓지않았다. 그리고 군부대 취사병으로 일하던 1983년 겨울, 청년은 설날 쓸 떡을 맞춰오던 길에 잠실 석촌호수에서 운명의 사람을 만났다. 작고한 서도소리 인간문화재 김정연 선생이었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었는데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요.가봤죠. 눈이 쏟아지니까 관객은 아무도 없는데 키 150cm도 안되는 할머니가 무명치마 저고리에 흰 수건을 쓰고 ‘수심가’를 불러요. 그 순간 벼락을 맞은 것 같았어요. 이거다, 내가 할 일은 바로 이거다 싶었지요.”
가례헌 지킴이 박정욱씨는 “김정연 선생과의 만남이 없었다면 가례헌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김선생이 박씨에게 미친 영향은 깊고 심대하다.
첫 만남 이듬해부터 박씨는 서대문구 창전동에 있는 매일 김선생의 집으로 서도소리를 배우러 다녔다. 갓 22세의 박씨는 이미 육순이 넘어 당뇨 등 온갖 병마에 시달리는 선생을 위해 15분 배우고 3시간 안마를 해드리면서 친모자 보다 더한 정을 나눴다. 오죽하면 생전의 김선생이 “우리 어머니가 널 보내줬나 보다”며 고마워했을까. 16세에 낳은 친딸이 있었지만 박씨를 양자로 들이고 싶어했다.
5대 종부였던 박씨 조모가 결사 반대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박씨는 선생이 돌아가신 뒤 10년 동안 친딸 대신 제사를 모셨다. “대동강물을 먹지않고는 서도소리 못한다더라”며 제자를 늘 애처로워했던 선생은 돌아가시기 15일전 애지중지하던 양금을 비롯 자신의 유품을 박씨에게 내렸다. 이 양금은 국립국악원이 국악박물관 명인관을 열 때 대여를 요청했을 정도로 귀한 물건이라고 한다.
“선생님은 평양 기성권번의 마지막 기생세대였죠. 1941년인가 일제가 전국의 기생조합에 속해있는 기생중 33명을 뽑아 전쟁 위문단을 구성했는데 그중 1등으로 뽑힐 정도로 기예가 뛰어난 분이었고 그만큼 예인으로서의 자긍심이 대단하셨어요. 그분에게서 소리는 물론 예인으로서의 철학과 사명감까지 그대로 물려받았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가례헌은 선생의 유품과 북한지역의 소리문화라는 점 때문에 전수가 쉽지않은 서도소리(평안도와 함경도 지역의 민요와 잡가 통칭)를 보존하기위해 박씨가 사재를 털어 마련한 공간이다. 전통과 현대를 잇는 아름다운 예식을 준비하는 집이라는 뜻에서 가례헌이라고 이름 붙였다.
선생이 돌아가신후 김정연제 서도소리의 계승자로 이름을 얻은 것이 경제적으로 큰 보탬이 됐다. 120평 남짓의 공간은 금홍이라는 기명을 가졌던 선생을 기리는 공연장 ‘금홍관’을 중심으로 식당과 평양기생의 유품 및 평양여성들의 생활사를 엿볼 수있는 상설전시관, 가례헌에 오는 사람들이 서당체험을 할 수 있도록 박씨가 직접 벼루에 먹을 갈아 이름 석자를 써보게 하는 사랑방과 다례를 익히는 다도관 등으로 꾸몄다.
사랑방과 다도관은 거창 신씨 청송파 6대 종가집 종녀였던 박씨의 어머니가 종가의 문을 닫으면서 처분하려던 종가집 유품과 대청마루 등을 그대로 뜯어다 꾸몄다. 자연스럽게 어머니도 가례헌 사람이 됐다. “여기 종가집 물건 다 있으니 이 집이 어머니 집 아니냐고 했지요. 덕분에 손님들에게 제대로 된 전통음식들을 내놓을 수 있게 돼 너무 좋아요.”
어떤 의미에서는 고졸한 양반집 가정문화와 평양기생의 예인문화라는 상반된 두 세계가 접목된 공간, 가례헌은 박씨가 짊어진 두 가지 상반된 세계를 잇는 가교 같은 느낌도 준다.
한달이면 150만 원에 이르는 월세와 각종 공연관련 비용은 한 달이면 10여 회에 이르는 공연수익과 대학 강의료 등으로 충당한다. 몇몇 관객이 식사비 대신이라며 놓고가는 돈은 애쓰시는 어머니에게 용돈 삼아 드리면 다시 음식이 되어 돌아온다. 주인이나 객 모두 인심 넉넉하게 써도 모자람 없이 늘 적당하게 공연이 유지되는 것이 신기하다.
박씨는 전통은 복합문화라고 말한다. 먹고 놀고 즐기고 배우는 모든 것이 동시에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우리 민속문화는 그 안으로 쑥 들어가봐야 압니다. 언뜻 촌스러워도 폭 안기면 엄마 품처럼 푸근하거든요. 국악이 공연이기 전에 삶의 일부분이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요.” 가례헌은 그 믿음을 구체화하는 공간이다.
가볼만한 하우스예술무대
◆ KOPAS 하우스예술파티- 한국실험예술정신이 국악과 양악, 춤, 퍼포먼스, 마임, 비디오아트 등 다양한 분야의 실험적 예술가들과 함께 꾸미는 격월 하우스 예술무대.
하반기에는 11월과 12월 둘째 토요일에 서울 평창동 코어핸즈사옥에서 펼친다. 1980년대 인기 듀오 '4월과 5월'을 비롯 플로리스트, 퍼포먼스 아티스트 등이 참여할 예정. 참가료 2만원(예매시 1만5,000원), (02)322-2852 WWW.KOPAS2000.CO.KR
◆ 하우스콘서트-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공연기획자 박창수씨가 운영하는 곳. 매달 2~3회 정도 클래식과 국악, 가요를 오가는 다양한 장르의 하우스콘서트를 연다.
29일 오후 8시에 강이고밴드(가수 강산에와 드럼연주자 이기태, 키보디스트 고경천이 결성한 밴드)의 연주가 펼쳐진다. 회비 2만원. WWW.CYWORLD.COM/HCONCERT
◆ 가례헌 목요 예술의 밤- 각종 전통음악과 춤, 시낭송, 다례, 풍물 등 공연을 10월 두번째 목요일 오후 8시에 펼친다. 한국서도소리보존회 회원들이 꾸미는 무대이지만 북청사자탈춤 전수자인 동선봉씨 등 각분야 전문가들의 초청공연이나 다례법 특강 등도 가진다. 010-8472-8033 http://cafe.naver.com/seodosori.cafe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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