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으로 사라진 마오쩌둥(毛澤東) 시대 계획경제와 집단경영 체제 모델인 인민공사(人民公社). 하지만 1962년 설립된 허베이(河北)성 저우지아장(周家庄) 인민공사(사진)는 지금까지 44년간 인민공사 본래의 ‘공동노동’ ‘공동분배’ 라는 원칙을 지키는 최후의 인민공사이다.
19일 중국 언론에 따르면 이 인민공사는 전국 농촌지역의 1인당 연평균 소득인 3,255위안(39만원) 보다 훨씬 높은 5,018위안(60만원)의 소득과 활력을 유지하는 생산공동체이다.
이 곳 5,000여명의 주민들은 공사가 정해주는 일터에 나가 반드시 일해야 하며 소득을 공평하게 분배 받는다. 제4대(隊) 소속 장순(張順)씨는 “이곳에서는 하라면 해야 한다”며 지정된 채소 밭으로 향했다. 이 곳은 노동을 모두 372종으로 나눈 뒤 10명의 대장(隊長)들이 이를 사원들에게 분배한다. 장씨는 이렇게 분배 받은 노동을 통해 지난해 1만1,000위안의 수입을 거뒀다.
이곳이 인민공사로 남아있는 가장 큰 이유는 탁월한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2001년 세상을 뜬 레이진허(雷金河)는 탁월한 경영능력으로 인민공사를 부유하게 만들었다. 1978년 국가적으로 면화가 부족할 것이라고 예측, 면화를 생산해 막대한 이익을 낸 그를 공사 사원들은 신처럼 따랐다. 개혁ㆍ개방이 시작돼 모든 농지가 개별 농민들에게 분배됐던 1982년 공사 구성원들은 회의를 열어 인민공사체제 유지를 결정, 시대를 역행했다.
공동체를 유지한 후 소속원들은 더 행복해졌다. 소속원들에게는 수돗물 등 각종 생활시설이 무료이고, 65세 이상 노인들에게는 양로 보험 혜택이 주어진다. 자녀 학비는 무상 지원된다. 인민공사는 지난 20년간 거주지 개선 사업을 벌여 모든 주민들이 현대화한 주택에 살도록 했으며 곤란한 가정에게는 거금을 무이자 대출 해주고 있다.
사원들은 “종자, 비료, 농약 구입 등 사사로운 스트레스가 없다”고 말했다. 공사 인근 농민들은 이런 처지를 부러워한다.
공사는 특히 노동집약적인 제조업 경영을 통해 복지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고 있다. 이 공사는 밸브 제조업체 등 9개의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인민공사는 그러나 개인 경영과 사업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강제로 노동을 분배하지 않고 자유로운 활동도 보장한다. 인민공사 책임자는 “현재 노동집약형 공업을 기술집약형으로, 농사를 기계화화는 방식으로 전환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이영섭 특파원 young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