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선(72)과 잭 아브라모프(48). 미 정가를 뒤흔든 로비 사건의 주역들이다. 올해 벽두 '아브라모프 불법 로비 사건'이 터지자 미 언론은 1970년대 '코리아 게이트'의 부활을 대서특필했다. 인맥과 돈, 파티로 얽힌 불법 로비의 더러운 피가 30년 동안 워싱턴의 배수관을 흘러왔다는 비판의 소리가 높았다.
로비의 행태는 유사하지만 둘의 신분엔 차이가 있다. 박씨는 2004년 말 코리아 게이트의 무대였던 워싱턴의 '조지타운클럽'으로 한국 언론인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나는 로비스트가 아니라 비즈니스맨"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미국 법이 허용하는 로비스트가 아니다. 미국에서 정부에 등록하지 않고 하는 모든 로비 활동은 모두 불법이므로 박씨는 무자격 로비스트,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브로커인 셈이다.
반면 아브라모프는 공인된 로비스트이다. 1,400명의 변호사를 둔 미국 8위 규모의 법률회사 파트너로 로비스트 명부에 이름을 올린 그는 백악관과 상ㆍ하원을 제 집 드나들 듯 했다. 하지만 로비의 제왕으로 통하는 그도 로비스트의 규칙을 지키지 않았다. 금품과 향응 제공과 탈세, 허위 송금 등 온갖 부정이 그의 활동에 얼룩졌다.
박씨와 아브라모프는 로비 세계의 어두운 양면을 상징하고 있다. 박씨가 무등록 로비스트로서 불법 행위를 했다면 아브라모프 행위는 등록 로비스트의 탈선을 의미한다. 브로커와 로비스트의 경계가 로비 규제가 발전한 미국에서조차 모호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달 30일 취임한 김성호 법무부장관이 로비스트법 제정을 화두로 꺼냈다. 음성 브로커의 피해를 막기 위해 로비를 양성화하자는 취지이다. 정의감 넘치는 특수부 검사로서의 실전 경험과 국가청렴위 사무처장을 지내며 다진 이론으로 무장된 그이기에 내년 초까지 관련 법안의 초안을 만들겠다는 각오가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문제는 미국식 제도의 이식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높다는 데 있다. 현재 로비스트법 제정의 논의 수준을 종합하면 핵심은 등록과 공개에 모아진다. "사람을 만나게 하되 공개하자"는 미국식 로비 규제의 준거를 따르는 것이다.
하지만 등록과 신고, 공개가 음성적 로비 활동을 완전히 제어하지 못하는 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아브라모프도 로비자금을 자선단체를 통해 송금 받는 방법으로 회계 신고의 의무를 교묘하게 빠져나갔다.
로비의 세계는 흔히 암흑의 정글에 비유된다. 공정한 게임의 룰이 온갖 뒷거래가 난무하는 정글에서 지켜지도록 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과제이다. 로비 활동이 양성화되면 돈과 조직을 갖춘 쪽이 의뢰인을 독점하는 현상이 생길 수도 있다. 사회적 통제력이 약할 경우 부패를 합법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비스트법 제정 목소리에 귀가 솔깃해지는 것은 우리 사회의 투명성을 높이는 일이 절박하기 때문이다. 대형 브로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윤리 강령을 외치지만 시간이 지나면 공염불이 돼버린다.
로비스트법 제정의 우려와 요구를 동시에 담아내기 위해서는 우리에게도 정확한 현실 진단이 요구된다. 미국식 제도를 옮겨 심는 것은 답이 될 수 없다.
법 제정을 추진하되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미국에서 로비스트의 등록과 공개를 보다 효율적으로 강제하는 '로비공개법'(1995)이 만들어진 것은 1876년 로비활동 규제론이 연방의회에서 처음 거론된 지 무려 120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다. 그런데도 불완전하다고 난리다. 필요성을 앞세운 나머지 현실을 간과하면 제2의 박동선, 제3의 아브라모프가 활개치게 될지 모른다.
김승일 사회부장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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