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처럼 재미없는 자민당 총재선거는 처음이다.” 최근 자민당에서 터져 나오는 푸념이다. 파란만장한 드라마가 펼쳐졌던 과거와 비교하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의 독주인 이번 선거는 맥 빠진 선거다.
그러나 정치인 아베 신조의 승부는 이제부터이다. 5년 내 헌법개정을 다짐하는 등 은연중에 장기집권의 야심을 드러내고 있는 그이지만 극복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진짜 승부는 내년 참의원 선거
일본 정계에서는 국민적 인기를 무기로 압도적인 당내 지지를 이끌어낸 아베 총리가 의외로 단명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내년 7월 개최되는 참의원 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할 경우 아베 정권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제1야당 민주당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대표는 최근 방송에서 “(내년) 참의원 선거는 여당이 과반수에 미달할 가능성이 크다”며 “그 경우 여당이 중의원에서 3분의 2를 점유하고 있더라도 정권운영이 안돼 정계개편을 포함한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와 관련, 호시 히로시(星浩) 아사히(朝日)신문 정치담당 편집위원은 “참의원 선거에서 여당이 패할 가능성은 90%, 과반수 미만으로 질 경우는 50% 정도”로 예상했다.
‘여당 필패론’의 근거는 이렇다. 참의원 선거는 총의석(242명) 중 절반인 121석을 3년마다 새로 선출한다. 현재 자민당은 112석, 공명당은 24석으로 여권이 136석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핵심은 다음 선거에 도전하는 여당 의원들이 ‘고이즈미 광풍’의 수혜자들이라는 점에서 여당의 의석수는 줄어들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10월 중의원 가나가와(神奈川)16구와 오사카(大阪)9구 보궐선거도 아베 정권이 치러야 할 전초전이다.
20일 총재선거가 아베 장관의 독주로 흥행에 실패한 데 대한 당내 푸념도 이런 선거를 앞두고 총재선거가 당이 국민의 관심을 끌 기회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에서 나오는 것이다.
당내 화합ㆍ공명당과의 조화도 관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후계자로서 집권하게 된 아베 장관은 당내 화합을 우선 과제로 내세우며 고이즈미 정권과의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가 ‘저항세력’이라며 내친 탈당 의원까지도 받아들일 생각을 내비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내년 참의원 선거 승리를 위해 거당체제를 구축하겠다는 현실적 계산이 작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제스처는 오히려 당내에서 혼란과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선 지난해 총선에서 저항세력을 물리치기 위해 내세운 ‘자객’의원들이 반발하고 있다. ‘고이즈미의 아이들’이라는 별명이 붙은 초선 의원들은 “참의원 선거만을 위해 저항세력의 복당을 허용한다면 중의원 선거에서 얻었던 신뢰를 모두 잃을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자민당 연립정권을 지탱하고 있는 공명당과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아베 정권의 주요 과제이다. 그러나 최근 공명당은 우경화 색채를 띠고 있는 아베의 자민당에 대해 불신감을 갖기 시작했다. 간자키 다케노리(神崎武法) 공명당 대표가 자민당 차기 정권과 새 연립을 합의하는 과정에서 아시아외교의 수복을 조건으로 제시할 뜻임을 밝힌 것은 시사적이다.
아시아관계 회복을 놓고 고민 중
아베 장관은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아시아외교라는 과제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객관적으로 볼 때 명백하게 오른쪽으로 기울고 있는 그이지만 현실정치가 그를 망설이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그는 앞으로 상당 기간 애매한 자세로 ‘야스쿠니(靖國)참배냐’‘정권유지냐’ 사이에서 손익계산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극단적으로 야스쿠니 참배를 하더라도 내년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서면 그렇게 할 것이라는 뜻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반대의 상황이 유력할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지난 4월 야스쿠니를 참배한 것으로 밝혀진 아베 장관은 일단 시간을 번 상태이다. 애매한 입장을 취하며 한국ㆍ중국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이것이 성공할 경우 그가 야스쿠니 문제를 슬쩍 내려놓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 동안 대북한 강경책과 당내 개혁, 위기관리 능력 등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아베 장관은 야당과의 당수 토론 등을 통해 본격적인 자질 검증을 받을 것이다. 그가 이 같은 시험대를 어떻게 극복할 지 귀추가 주목된다.
도쿄=김철훈 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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