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나라당엔 강재섭 대표의 리더십이 한창 도마에 오르고 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문제와 ‘바다이야기’ 의혹 등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5ㆍ31 지방선거 때 벌어놓은 점수를 까먹고 있다는 불만이다. 7ㆍ11 전당대회에서 강 대표를 도왔다는 한 의원은 “강 대표와 평소 친하든 아니든 세 명만 모이면 당을 걱정하다가 나중엔 대표를 원망한다”며 “측은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나라당 지지도는 강 대표가 선출된 7ㆍ11 전당대회 이후 호재가 많았는데도 10%포인트 가량 하락했다는 게 최근 각종 여론조사 결과다. 이에 대한 최종 책임은 물론 강 대표에게 있다.
하지만 누가 대표가 됐든 이 같은 상황은 별로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른바 ‘관리형 대표’의 한계 탓이다. 강 대표는 리더십의 기본인 힘이 없다.
정당에선 공천권을 쥐고 있던지 도저히 거스를 수 없는 명분을 쥐고 있던지, 아니면 차기 대선주자로서 집권비전이 있던지 해야 의원들이 말을 듣는다. 인격이나 열정 같은 덕목은 힘이 뒷받침된 다음의 문제다. 의원들을 움직이는 것은 ‘대표의 말을 듣지 않으면 큰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일종의 두려움이다.
대표가 힘이 없는 정당은 중대한 국면을 맞았을 때 지금의 한나라당처럼 산으로 가게 돼 있다. 지도부의 영(令)은 서지 않고, 비주류는 이 때다 싶어 딴 목소리를 내고 결국은 당이 이렇게 갈팡질팡 하는 것은 대표의 책임이라고 다들 한마디씩 한다. 박근혜 대표 시절 박 대표라고 실책이 없었을 리 없지만, 그럭저럭 조용히 넘어간 것은 재보선 연전연승에서 그의 파괴력을 목도한 의원들이 알아서 기었기 때문이다.
강 대표는 어차피 폼 나는 대표가 되기 어렵다. 힘 없는 대표는 할 수 없다. 일각에는 “대표가 발탁한 주요 당직자조차 대표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는 말도 나온다. 이런 원심력은 당내 대선후보 레이스가 본격화하면 더 강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강 대표는 새 역할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정권을 되찾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했지만, 무슨 일을 하려는지 알 도리가 없다. 두 달간 언행에서 전임 대표들과 다른 비장함을 발견하지 못했다.
강 대표가 의원들과 지지자를 감동시킬 수 있는 가장 쉽고도, 어려운 방법은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다. 모두 집착하는 이익을 과감히 포기하거나,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악역을 기꺼이 맡는 것이다. 그게 현재의 처지에서 당을 위한 최선이고, 본인의 다짐과도 부합한다.
정기국회가 열리고 있는 평일에 피감 기관에서 골프를 친 의원 3명에 대한 처리문제가 ‘뜨거운 감자’가 돼 있다. 당 이미지 추락은 심대한데 내부 온정주의 때문에 서로 눈치만 보는 형국이다. 선거를 치르겠다면 민심과 당심의 괴리가 있을 때 민심에 눈 높이를 맞추는 게 당연하다.
자기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은 정치인으로선 정말 하기 싫은 일이고, 강 대표의 연성(軟性) 스타일과도 맞지 않는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강 대표는 그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이 대선에 기여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본인의 당내 입지도 단단히 할 수 있는 길이다. 후일 “대권도전을 포기한 뒤 달리 할 일이 없어 대표를 했다”는 소리를 들어서야 되겠는가.
유성식 정치부장 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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