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벽이 우리나라만큼 높은 나라도 드물다.
중고등학생 때 결정된 문ㆍ이과 구분은 자신의 직업을 결정짓고 평생 남의 영역에 눈을 돌리지 않는 게 보통이다. 이에 대해 “자연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높은 벽을 허물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과학문화재단이 지원하는 과학문화연구센터는 15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문ㆍ이과 구분의 문제점, 그 역사와 현주소’라는 심포지엄을 열고 이 문제를 집중 조명했다.
유교전통이 단절의 원인?
주제발표를 맡은 임종태 서울대 화학부 교수는 “과학과 사회문화의 단절이 조선시대 기술자를 천시한 중인(中人) 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통념은 엄밀한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조선시대 중인계급의 다른 직종인 의학, 법률, 외국어 등은 현재 폄하는커녕 오히려 조선시대 사대부와 맞먹는 엘리트 직종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임 교수는 “조선시대 사대부의 지적 취향이 경학(經學) 형이상학 시문(詩文) 등 인문학쪽에 경도된 것은 사실이나 천문 지리 의학 등 전 지식분야의 통일성이 더욱 강조되었다”며 “세종대나 영ㆍ정조대 인재들은 르네상스 지식인과 견줄 만했다”고 말했다.
특히 18세기말~19세기초 홍대용 서호수 이가환 홍길주 남병길 나병철 등 사대부 역산가(曆算家)들은 중인계층과 지적·인간적으로 교분을 쌓으며 수학과 천문학에 관한 전문지식을 갖추었다.
임 교수는 “지금처럼 문ㆍ이과 구분이 심해진 것은 오히려 일제 강점기와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을 거친 이후”라고 주장했다.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에 법학부 문학부 이학부로 구분된 도쿄(東京)대학 체제가 도입됐는데 이공계 교육의 수혜자는 극소수였다. 이들은 또 법률 의학 등과 달리 안정된 직장이 없었기 때문에 과학기술자 집단은 거의 세력을 형성하지 못했다.
반면 70년대 들어 박정희 정권이 과학기술을 전폭 지원하면서 과학자는 우리나라 근대화의 일등공신으로 부각되었다. 하지만 민주주의 운동에 몸담은 인문사회과학자나 예술가들과의 간극은 더욱 깊어진 결과를 낳았다.
통합욕구 못 미치는 과학교육
최근 교육계는 문ㆍ이과 구분을 타파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대학입학 수능시험도 계열구분이 아닌 시험영역선택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문ㆍ이과 구분이 여전하다.
송진웅 서울대 물리교육과 교수는 주제발표에서 “중등교육보다 더 심각한 건 대학교육에서의 문ㆍ이과 단절”이라며 “현대에 필요한 창의적 인재를 키워내기엔 대학, 대학원의 교육체제가 너무나 경직돼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런던대학 물리학과를 예로 들면 경영학과 물리학, 과학철학과 물리학 등 문ㆍ이과를 넘나드는 다양한 전공을 제공하고 있다.
송 교수는 “중등교육은 겉보기에 문ㆍ이과가 없는 통합교육이 이뤄지고 있으나 결과적으로 배워야 할 과목이 너무 많아 깊이 있는 통합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심포지엄을 주최한 과학문화연구센터 센터장 홍성욱(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교수는 “이공계 학생들을 상대로 조사해 보면 과학계 문제를 인문ㆍ사회 과학적으로 다루는 것에 관심이 많지만 대학 교육이 이러한 욕구를 따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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