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크 모리세이 지음ㆍ김난령 옮김 / 생각의 나무 발행ㆍ2만5,000원
예술가에게 필생의 라이벌이 존재한다는 것은 재능을 발전시킬 수 있는 훌륭한 동력이자 큰 행운이다. 비록 두 사람은 피 말리는 경쟁을 하겠지만, 감상자 입장에선 훌륭한 예술작품을 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세계의 여느 대도시와 달리 마천루 없이도 그 위용을 자랑하는 로마. 우리가 기억하는 로마의 모습은 건축사에서 바로크 양식의 대가로 꼽히는 잔 로렌초 베르니니(1598-1680)와 프란체스코 보로미니(1599-1667), 두 사람의 경쟁의 산물이다. 건축사 연구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로마의 건축물을 통해 17세기 건축 현장에서 벌어진 두 거장의 일대기를 재창조한다.
베르니니는 일찌감치 천재성을 인정 받아 교황의 직속 건축가가 돼 교황의 후원으로 로마 곳곳을 자신의 손으로 디자인했다. 또 ‘로마의 취향이 곧 베르니니의 취향’이라고 할 정도로 사회적 성공을 거둔다. 반면 일개 석공으로 출발한 보로미니는 뒤늦게 인정 받았다. 하지만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비타협적이고 까다로운 성격 때문에 그는 당대의 권력자들과 대중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처럼 상이한 이력의 두 사람은 서로를 의식하며 상대의 약점을 찾고 더 나아지려 노력했다. 성 베드로 성당의 종탑에서 균열이 발견된 사건은 두 사람의 경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보로미니는 베르니니가 불안정한 기초 위에 종탑을 무리하게 세우는 바람에 균열이 생겼다며 베르니니의 발목을 잡았다.
이로 인해 종탑은 철거되고 승승장구하던 베르니니는 씻을 수 없는 불명예를 얻게 된다. 이 밖에도 이 책은 산탄드레 알 퀴리날레 성당과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성당 등 베르니니와 보로미니를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는 건축물들을 생생하게 소개한다.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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