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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국인' 문신에서 '세계인' 문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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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국인' 문신에서 '세계인' 문신으로

입력
2006.09.15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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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세태의 그림자가 연일 보도망을 잠식하고 있는 요즈음 오래간만에 멀리 독일 바덴바덴에서 유쾌한 소식이 날아들어왔다.

'MOON SHIN in Baden-Baden', 문신 월드컵 기념 초대전이다. 그곳 현지 교민 이영국씨(바덴바덴 시립 교향악단 연주자)의 전언에 따르면 지난 6월 초부터 9월 10일까지 110일 간 열린 타계한 한국 조각가 문신의 초대전으로 한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고 한다.

독일 남서부 소도시 바덴바덴의 최대 미술관인 프리더 부다 미술관(Frieder Budar Museun)을 비롯하여 도심의 레오폴트 광장을 기점으로 공원 곳곳에 이 조각가의 브론즈 철제 조각작품이 세워지고, 그를 추모하기 위한 음악회로 '윤이상 앙상블 음악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갖춰졌다고 한다.

'유럽의 여름 수도'로도 통하는 인구 5만의 바덴바덴시에서는 문신전과 시기를 전후하여 피카소와 샤갈전도 열렸다. 그런데 이들 전람회를 압도하는 문신전의 열풍이 충격적인 파장을 몰고 오면서 바덴바덴을 그야말로 '문신의 도시'로 변모시켰다는 제보자의 감격적인 메시지도 첨부되었다.

저명한 작곡가의 문신을 추모하기 위한 작곡 계획이 있는가 하면, 평론가의 평론도 작성 중에 있으며 심지어는 전시 관람객들이 휴대폰에 작품을 입력하는 소동이 가십거리가 되는 일까지 생겼다 한다.

올해는 조각가 문신이 별세한 지 11주기를 맞는 해다. 필자는 꼭 11년 전 고인의 요청으로 병상에서 투병중인 그를 마지막으로 방문한 적이 있다. 그리고 1주일쯤 뒤에 그는 세상을 하직했다.

고인이 그처럼 필자에게 관심을 보였던 이유가 이전에 '미술평단'지에 실린 필자의 시평 졸문 '문신미술관을 살리자'를 읽고 감명을 받았던 때문임을 나중에야 들어 알게 되었다.

생전의 문신은 그야말로 초지일관 부단히 예술에 헌신했던 참 예술가상을 견지했던 인물이다. 그리고 처절하게 세상을 살아왔던 생활인이기도 했다. 조각가 문신은 '한국인'으로 출발했으되 '세계인'으로까지 위상을 높인 드문 예술가의 한 사람이다.

일제시대 적지 일본 땅에 광부로 끌려간 부친과 스치듯 부부의 연을 맺은 일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나 생존 초반부터 타지에서 이방인의 불운을 감수해야 했었다. 일본에서의 암울했던 어린 시절을 거치고 예술에 눈뜨면서 그는 한국에 왔고, 1960년 이래 프랑스에 둥지를 틀고 16년간 살았다. 유럽에서의 체류기간 총 20여년 간 조각가로 활동하여 150여 회의 작품전시를 했다.

일본에서의 수학기간에 회화로 출발했으나 프랑스에서 조각가로 변신한 문신 예술은 타블로와 입체가 병행한다. 유럽생활을 청산하고 향리 마산에 입지를 굳힌 그는 저택 주변의 달동네 구름을 정리하며 미술관, 조각공원을 조성하는 작업에 열정을 쏟다가 쓰러졌다.

문신의 작품세계는 추상적이면서도 곤충류나 조수류 등 생명체의 유기적 형상에 골조를 둔 근원요소로서 집약된 조각이다.

직립적이며 시메트리칼한 기하학적 구조가 갖는 엄격함과 용의주도함, 엄청난 스케일의 생태미, 혹은 정묘하면서도 정제된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

70년대 중반에 문신이 유럽에서 귀국했을 때 어느 기자는 '쇠만큼이나 강인한 조각가의 귀향'이라고 쓴 일이 있다.

김인환 미술평론가ㆍ전 조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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