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을 이어주던 대화의 끈이 뚝 끊어진지 만 2개월이 지났다. 지난 7월 5일, 북한은 남한의 만류를 비웃기라도 하듯 미사일을 쏘아올렸고, 남한은 배신감마저 느끼면서 쌀ㆍ비료 지원 연기로 응수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열린 제19차 남북장관급회담은 아니나 다를까, 예정된 날짜를 다 채우지 못하고 결렬되었다. 이후 남북 당국은 대화는 고사하고 서로 얼굴을 마주칠 기회조차 없어졌다.
●대화 욕심 굴뚝같은 북한
남북관계는 다시 어두운 터널 속으로 빠져 들어간 것일까. 과거 대화가 꽤 오랜 기간 중단되었던 아픈 기억이 채 가시지도 않은 이 시점에서 말이다.
남북대화는 지난 2004년 7월부터 중단된 바 있다. 당시 김일성 전 주석의 조문 불허 문제, 탈북자 집단입국 사태 등을 배경으로, 북측이 회담을 잇달아 무산시켰다. 결국 다음해 5월 남북차관급회담이 개최될 때까지 남북은 10개월간 서로 등을 돌리고 살았다.
대화의 재개는 미국과 남한의 합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5월,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 ‘미스터’라는 표현을 썼고 라이스 국무장관은 북한을 주권국가로 호칭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남북차관급회담이 탄생했고 이는 정동영 장관 - 김정일 위원장 회담,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선언으로 이어졌다.
두 가지 특기할 만한 점이 있다. 첫째, 대화 중단에는 남북관계적 요인이 기본이었는데 대화 재개에는 국제적 요인과 남북관계적 요인이 선순환구조를 형성했다. 둘째, 대화중단 사태에도 불구하고 쌀ㆍ 비료 지원은 영향을 받지 않았다. 대화가 중단된 시점인 7월에 비료는 이미 지원이 완료되었으며 식량은 이미 차관계약서가 체결된 상태였다.
이에 반해 이번의 대화 중단은 첫째, 남북관계적 요인보다는 국제적 요인이 우선이다.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가 결정적이다. 둘째, 비료는 지원이 완료되었으나 식량은 그렇지 않다. 아직 차관계약조차 체결되지 않았다.
남한 정부가 대화 재개에 강한 의욕을 가지고 있음은 불문가지이다. 하지만 북한이 무언가를 해주어야만 남한 정부도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미국측이 무언가를 해 주기를 바라는 갈망도 있다.
북한 당국도 남북대화에 나가기만 하면 당장 실리 획득이 가능하다. 쌀 30만~40만톤과 경공업 원자재 8,000만달러어치는 확보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비료도 더 얻을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지난번 대화 중단 사태와의 차이점이다.
그런데 문제는 미사일을 쏘았어도 북한은 원하는 바를 손에 넣지 못했다는 점이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 무시 및 압박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 북한이 목을 매는 북미 양자대화는 실현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권력 입장에서 보면 체제 보장은 그 무엇에 우선하는 최대 목표이다.
북한 당국의 원초적 딜레마라고나 할까. 경제적 실리와 체제유지 사이의 갈등이다. 한편으로는 대화에 나서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명분이 없다. 그 명분은 미국이 제공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북에 명분 줄 수 있는 회담 기대
물론 미국의 정책기조가 변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전망은 썩 밝지 않다. 하지만 지난해 한미정상회담을 전후해 미국측이 보여주었던 ‘말 차원’의 성의에 대한 기대감은 분명 존재한다. 외교적 수사일지언정 남북관계의 해빙을 가져온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남한이든 북한이든 미국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미국에서 한미정상회담이 열리는 오늘 아침이 각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양문수ㆍ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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