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간 한국은 개발의 이름으로 얼마나 무지막지한 변화를 겪어온 것일까. 압축 성장의 광포한 물결에 휩쓸려 사라진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은 것일까.
사진작가 강운구는 30년 전 세 군데 산간 마을, 강원도 치악산의 황골과 설악산 백담계곡의 용대리, 전북 장수에서 남원으로 넘어가는 고개의 수분리를 찍었다. 그리고 30년 뒤 후배 사진작가 권태균이 그 마을들을 찾아가 다시 찍었다. 그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열화당에서 나온 2권짜리 사진집 ‘강운구 마을 3부작 그리고 30년 후’가 보여준다. 강운구가 1970년대에 찍은 ‘마을 삼부작’과 , 권태균이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다시 찍은 ‘30년 후’를 묶었다.
“서른 해 동안 세 마을은, 그러므로 모든 이 땅은 소용돌이치는 바다가 되었다”는 강운구의 말대로, 옛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황골의 초가집, 용대리의 너와집, 수분리의 건새집(억새풀을 엮어 지붕을 인 집)만 없어진 게 아니다. 비록 가난했지만 푸근하던 풍경이 덩달아 사라지면서 사람살이도 팍팍해졌다. 잃어버린 것들이 거느리고 있던 아름다움, 사람다움까지 모습을 감춘 것은 아쉬운 일이다. 두 권을 나란히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착잡해진다. 그러므로 이 두 권의 사진집은 단순한 기록 또는 보기 좋은 사진작품집에 그치지 않고, 근대화와 개발, 산업화의 이름으로 벌어진 폭거를 고발하고 문화사적 반성을 요구하는 증언이다.
강운구는 “예전에는 가난해도 풍족해보였는데, 지금은 풍족한지는 모르지만 가난해 보인다”고 썼다. 농사 지으며 엿을 고아 팔던 소박했던 황골 사람들은 모텔, 노래방, 식당 등 관광객을 상대로 한 한철 장사치로 전락했고, 내설악 용대리의 너와집 마을은 새마을운동으로 벌어진 불량주택 철거에 자취도 없이 사라졌고, 한 번 억새로 지붕을 얹으면 30년도 가던 수분리의 아름답고 실용적인 건새집은 삭막하기 짝이 없는 슬레이트 지붕과 시멘트 담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30년 전 마음껏 뛰놀던 개들이 철창에 갇힌 것처럼, 무력해진 노인들은 노인정에서 무료하게 TV를 보거나 화투를 가지고 노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두 작가는 다시 30년 뒤, 누군가가 이 세 마을을 기록할 수 있도록 GPS좌표를 책 말미에 적어놨다. 그 때 다시 사진집이 나온다면, 착잡하지 않게 볼 수 있을까.
오미환 기자 mh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