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거나 유학을 꿈꾸고 있는 자식들은 가끔 집안 형편이 어떤지 궁금하다. 이때 우선 빚이 얼마인가를 갖고 가정 형편을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빚을 갚아 나갈 수 있을 만큼 가장의 벌이가 괜찮은지도 판단기준이 된다.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더 많을 경우 결국 빚이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라살림 형편을 알아보자. 우선 나랏빚은 내년 말에 306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또 해마다 세금으로 거두는 것보다 쓰는 게 더 많아 매년 9조원에 달하는 적자 국채를 발행할 정도로 재정수지도 아주 나쁘다.
그런데 정작 나라살림을 꾸려가고 있는 정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30%대로 미국(64.1%), 일본(172.1%)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말하며 만사태평으로 안심하라는 말만 하고 있다.
빚이란 남의 집보다 큰가 작은가보다 얼마나 빨리 늘어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정도는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데도 말이다. 빚이 빨리 늘면 늘수록 이자 갚기도 힘들 정도로 매년 살림살이가 힘들어진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나랏빚은 외환위기 이후 10년간 무려 5배가 늘었다. 일본이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암울한 시대에 대략 2배 정도 나랏빚이 늘었다는 점을 상기할 때 우리의 빚 증가는 그야말로 광속이다.
정부는 현 정부 들어 나랏빚이 더욱 늘어난 것이 지난 정부에서 발생한 공적자금 손실 49조원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런 변명에 전혀 관심이 없다. 누구 탓이든 지금 현재의 나랏빚만 보면 숨이 막힐 지경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2000년 총선 당시 이른바 국가채무논쟁의 기억을 되살려보자. 당시 정부와 여당은 보증채무는 정부가 보증을 선 것으로서 국가채무 범위에 포함되어서는 안된다고 강변했다. 당시 보증채무 중에서도 회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채권은 직접채무로 간주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에 대해 정부와 여당은 국제기준을 내세우면서 여러 언론매체를 통해 반박했었다.
그러나 진위는 밝혀졌다. 보증채 49조원이 회수불능으로 판정되어 2003년부터 4년 동안 국채로 전환되었던 것이다. 바로 이 49조원을 갖고 현 정부는 자신들의 탓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잊혀진 국가채무논쟁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은 정부가 여전히 직접채무만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국가채무의 크기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정부의 크기를 넓은 의미로 이해하자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이것만이 빚'이라고 하는 것보다 앞으로 빚이 될 가능성이 있는 여러가지를 두루두루 살펴보고 대처하는 것이 올바른 살림살이이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기금채무와 나아가 공기업을 포함하는 정부산하기관 채무를 포함하는 일반정부 채무를 추정하면 GDP 대비 45%에 달한다는 연구결과가 있기도 하다.
이런 어려운 나라살림에도 최대 1,600조원이 소요되고 나랏빚은 GDP의 73.4%에 달할 비전 2030을 발표하고 있는 정부를 보면 과연 나라살림을 꾸려나갈 생각이 있는지를 의심케 한다.
형편이 어려운 가정은 늘 씀씀이를 최대한 줄이면서 가장이 돈을 더 벌어서 이자와 나아가 원금을 갚을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으려 애써야 한다. 올바른 나라살림살이 또한 지출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기업과 근로자들이 열심히 경제활동을 하도록 이끌어 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안종범ㆍ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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