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 끝에서 끝까지 28m를 쉴새 없이 뛴다. 목은 뻣뻣하고 손발 감각은 온전치 못하지만 휠체어 바퀴를 힘껏 굴려본다. 질주가 순탄치는 않다. 사방에서 수비진이 거칠게 태클한다. 그렇다고 공을 놓칠 수는 없다. 기회를 보다 동료에게 패스해 준다. 동료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무한질주. 터치다운!
1쿼터가 끝났다. 고승범(32)씨는 잠시 휴식을 취한다. 고씨는 1쿼터 내내 코트를 수십 차례 왕복했다. 그런데 '신기하게' 땀이 안 난다. 그는 "목 신경 마비로 온도 조절이 안돼 땀이 안 나요. 더워 죽겠는데 열이 제대로 식지가 않아요."라고 했다.
장순태(46)씨는 휠체어와 부딪혀 손바닥이 벗겨졌다. 아픈 기색은 없다. "뛰고 부딪히다 보면 다친 줄도 몰라요. 휠체어가 부딪힐 때 느끼는 쾌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요."
10일 서울 오금동 곰두리체육관. 국내 최초의 휠체어 럭비팀인 '서울 패스(PASS)'는 12일 울산에서 열리는 전국장애인체전을 앞두고 막바지 연습이 한창이다. '팀'이라고 해봤자 12명이 고작이지만 이들이 내뿜는 열기로 체육관은 후끈 달아올랐다.
이들은 모두 장애인이다. 그것도 휠체어 없이는 한 발도 움직일 수 없는 경추 사지마비 장애인이다. 대부분 교통사고로 목을 다쳐 손발조차 움직일 수 없다. 다리도 떨리고 손가락 마디마디 감각이 무디다.
그러나 예사롭지 않은 과거 경력 때문인지 의지와 투지 만큼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최재웅(19)군은 영국 유학 중 럭비선수로 활동하다 다쳤다.
고승범씨는 고교 때 야구 청소년대표팀 선수로 뛸 정도로 잘 나갔지만 수영 중 바닥에 머리를 부딪혀 목을 다쳤다. 한국체대 태권도 선수였던 김승태(32)씨도 13년 전 수영을 하다 다쳤다. 조정 선수 출신인 한두희(39) 플레잉코치는 7년 전 교통사고로 화를 입었으나 불굴의 의지로 휠체어 세계펜싱대회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최고령 장순태씨는 북파공작원 출신이다.
한 코치는 "처음에는 공을 1m도 못 던졌어요. 죽어라 연습하니 이제는 3,4m는 던지게 됐죠."라고 말했다. 격렬한 경기 모습은 아찔할 지경이다. 휠체어 스피드와 몸을 아끼는 않는 충돌 장면은 탄성을 자아낸다.
그러나 장비와 시설은 이들의 열정에 훨씬 못 미친다. 럭비용 휠체어는 500만원이 넘어 선수 대부분은 값싼 농구용 휠체어를 사용한다. 팀 관계자는 "전용구장이 없어 항상 무거운 장비를 들고 다닌다"며 "실업팀이 창단돼 마음껏 뛰고 싶다"고 말했다.
●휠체어 럭비
농구코트에서 8분씩 4쿼터로 치른다. 4명이 한 팀이며 공을 쥔 선수가 엔드라인을 통과하면 1점을 준다. 공을 잡으면 10초 안에 드리블이나 패스해야 한다. 목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경추마비 환자들을 위해 슛을 하려면 고개를 쳐들어야 하는 농구 대신 개발됐다. 2000년 시드니 장애인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우리나라에는 '서울PASS'를 비롯해 4개 팀이 창단됐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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