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홍콩에서 국제앰네스티가 주관하는 아시아지역 사형폐지모임이 있었다. 나와 유인태 의원은 특별대접을 받았다. 아시아 각국 사형제도와 관련하여 10여개 부정적 항목의 해당 여부에 대한 평가표에서 그 이유가 드러난다. 유독 한국만 해당사항이 한 개도 없다. 경제대국을 뽐내는 일본도 사형 집행 사실을 비공개하는 등 2개 항목에 걸렸다.
앰네스티는 우리를 아시아에서 사형 폐지가 가장 유력한 나라로 보고 올해를 한국 사형 폐지의 해로 정했다. 아! 이제 우리가 일본보다 더 나은 문화국가로 가는구나. 어깨가 으쓱했다. 일본 변호사협회를 비롯한 사형폐지운동단체들은 3년간 사형 집행을 하지 않는 것을 최대목표로 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는 벌써 9년째 사형이 없다.
지금 감옥에는 유영철을 비롯해 63명의 사형수들이 있다. 이런 흉악한 이들을 보면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당장 없애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끔찍한 사건이 날 때마다 사형존치 여론이 거세지는 것도 그럴 법하다. 그러나 남미 베네주엘라가 이미 100년도 더 전인 1863년에 사형제도를 없앴다. 거기라고 유영철 같은 사람이 없었겠는가. “유럽을 사형이 없는 대륙으로 만들자.” 이 구호 아래 EC는 사형 폐지를 가입조건으로 삼고 터키도 가입을 위해 2004년 완전 폐지했다.
아프리카에서도 앙골라 세네갈 같은 많은 나라들에 사형이 없다. 전 세계적으로 112개 나라가 폐지했고 존치는 83개국. 1999년 한 해 중국 1,077명, 이란 165명, 몽골 100명, 사우디 103명, 미국 98명이 사형당했다. 유엔은 사형폐지 입장이고 유엔안보회의는 수십만명의 인종학살을 자행했던 유고와 르완다의 전범들에 대해서조차도 사형은 불가하다는 전범처리원칙을 명백히 했다.
사형이 폐지되면 흉악범이 들끓을 것이라는 걱정도 있다. 하지만 유엔은 1988년과 2002년 조사를 통해 “사형제도가 종신형과 같이 그 위협도가 떨어진다고 간주되는 다른 형벌에 비해 큰 살인억제력을 가진다는 가설을 수용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자세”라고 밝혔다.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사형폐지법안도 살인범을 사회에 풀어놓자는 것은 전혀 아니다. 가석방이나 감형 없는 절대적 종신형을 통해 평생 자신의 죄를 뉘우치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엊그제 55세의 사형수가 감옥에서 자연사했다. 비록 살인범들은 사람을 죽일지라도 이성적 존재인 국가만은 사람을 죽여서는 안된다는 명제가 제대로 실현된 셈이다.
최근 헌법재판관에 임명되는 이들 가운데도 사형폐지 의견을 가진 이들이 늘고 있다. 헌법제37조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형벌을 부과할 수 있으되 ‘자유과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인 생명권은 그 어떤 이유로도 침해할 수 없다는 당연한 헌법해석이 이제 헌법재판소에서 확인될 시점이 되었다.
우리는 40여년이라는 유례없이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었다. 이제는 선진 유럽에 버금가는 문화국가로 거듭날 때다. 과반수가 넘는 국회의원이 찬성한 폐지법안이 이번 회기에 통과되길 바란다.
김형태 / 변호사ㆍ사형폐지범종교인연합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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