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하반기에 '동북공정'이란 단어가 무방비 상태였던 한국인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더니 3년이 지난 지금 폭풍으로 우리의 미래를 습격하고 있다. 중국은 2002년 5월에 시작된 동북공정의 완결을 눈앞에 두고 결과물들을 공개했다. 거기에 소위 '장백산 공정'마저 추진하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정부 부처들이 질타당하고 있다. 또 새로 발족한 동북아역사재단과 해체된 고구려연구재단 간의 이상한 싸움도 벌어지고 있다. 물론 최종책임은 정부가 질 수밖에 없지만 언론도 책임이 크다. 또 반성도 고백도 하지 않은 채 적반하장으로 남의 탓으로 돌리는 역사학자들의 책임은 더욱 크다.
● 학문논쟁 아닌 거대한 국책사업
하지만 이것이 역사 전쟁이라면 책임 공방으로 적전 분열할 수는 없다. 먼저 동북공정이 주변국의 우려와 친중파들의 입지까지 무시하면서 왜, 어떤 목적으로 추진되는가를 국민 모두가 알아야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다. 동북공정은 고구려 역사를 둘러싼 학문논쟁이 아니며, 우리의 역사 왜곡 혹은 역사 탈취를 둘러싼 자존심 문제도 아니다. 문건에 나타난 추진과제의 내용을 보아도 분명하다.
필자가 논쟁의 초창기부터 지적했듯이 동북공정은 중국 정부가 기획하고 정교한 타임 스케줄에 따라 진행되는 치밀하고 거대한 국책 사업이다.
동북공정은 크게는 서남공정, 탐원(探源)공정에서 드러나듯이 21세기에 중국이 초강대국으로 발돋음하려는 세계질서 전략의 일환이며, 아시아에서는 신 중화제국주의의 발현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다음은 석유 등 자원, 소수민족 문제, 영유권 등을 둘러싸고 강대국들 간의 갈등이 발생할 만주지역의 역사적인 영토권마저 확보하고, 나아가 한민족의 동아시아 역할론을 희석시키려는 목적이 있다.
거기서 우리에게 빼앗은 간도 문제, 러시아에게 빼앗긴 연해주 회복 문제 등이 동북공정의 중요한 의제가 되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장백산 공정 등이 가동됐다. 우리를 흥분시키는 고구려사 왜곡, 발해사의 탈취 등 소위 역사전쟁은 이런 거대한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동북공정의 실체가 이렇다면 정부 언론 지식인 일반 국민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는 자명하다. 전쟁에서는 지금처럼 흥분만 하거나 책임공방으로 적전 분열한다면 백전백패이다. 우선 책임을 통감하면서 참회하자. 다음은 함께 모여 가슴을 열고 머리를 맞댄 채 고뇌하면서 한민족의 미래와 연관시켜 고도의 전략과 전술을 모색해야 한다.
정치인들은 정치논리로 교활하게 접근하면서 중국 주변의 베트남 몽골, 인도차이나 국가들, 인도 및 타지키스탄,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과 연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와 활동을 통일적으로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새로 발족한 동북아역사재단에는 더욱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
● 政ㆍ言ㆍ學 합심 대응해야
언론은 일반인들과 학생들에게 동북공정의 목적을 정확하게 알리고, 조국과 자기 역사에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지면과 화면을 활용하여 사실보도와 함께 대안과 다양한 견해들을 제시하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고구려 역사만 하더라도 국내 학자들의 활동이나 연구성과들을 자주 소개해야 할 것이 아닌가. 축구경기 중계나 연예방담에 쓰는 시간의 만분의 일만 할애해도 우리 미래는 틀림없이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문제많은 역사학자들이야말로 정말 해야 할 일이 있다. 시대정신과 시대지식에 둔감하고, 뒷전에서 훈수만 두며 자기 역사조차 비하의 시각으로 보는 태생적 한계를 못 벗어난 역사학자들이 많다.
이젠 순수학문이라는 궤변으로 호도하지 말고 우리 역사를 어떤 사관과 방식으로 연구해야 하는지, 이 시대에 필요한 역사학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뇌해야 한다. 동북공정 대응을 비롯한 일련의 작업은 역사학자들, 특히 일부 고대사학자들에게만 맡길 정도로 안이한 상황이 아니다.
윤명철ㆍ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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