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서울 공연 예술제’가 10월 7~29일, 지금 한국에서 무대 예술의 이름으로 구현할 수 있는 최대치를 선보인다. 올해로 6회째인 이번 행사에는 15개국에서 온 26편의 무대가 펼쳐진다. 아무리 사이버 문명이 범람해도, 인간의 몸에는 인간만의 메시지가 있다는 믿음의 열매들이다.
이번 행사는 특정한 테마를 잡지 않았다. 그것은 자본의 논리로부터 자유로운 연극은 매우 자유로이 각각의 길을 추구한다는 사실이 세계 연극의 실상을 통해 자명해졌기 때문이다. 다양한 모습들은 ‘근본’이라는 관점에서 포용돼야 한다는 게 주최측의 시각이다. 아르코예술극장, 국립극장, 서강대 메리홀, 드라마센터, 마로니에 공원 등 정규ㆍ비정규 공연 공간들이 이번 축제를 위해 기꺼이 마당을 제공한다.
거장들이 곁으로 바싹 다가섰다. ‘정화된 자들’은 요절한 천재 작가 사라 케인의 잔혹미학극으로, 폴란드의 각광 받는 신예 크쉬스토프 바를리코프스키의 연출로 국내 초연된다. 최근 세계적으로 부활하고 있는 안톤 체홉의 ‘갈매기’와 ‘세 자매’는 헝가리ㆍ 루마니아 연출가의 혁신적 해석으로 올려진다.
서구와 동구라는 전통적 이분법으로 보자면 이번 행사는 확실히 동구권의 연극 작업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거기에는 ▦자본주의의 때가 덜 묻었다 ▦공연 예술의 근본이 아직은 지켜지고 있다 ▦러시아의 전통 깊은 정통적 연극관이 살아 있다는 주최측의 판단이 깔려 있다.
연극은 세계로 열린 창이기도 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뿌리 깊은 불화를 극화한 ‘풀리지 않는 매듭’은 국내에서는 못 보던 주제의 작품. 비록 연극이라는 틀을 쓰긴 했어도 이스라엘에서 이런 발언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반국가적인 무대다. 주최측은 “정치극이 흑백 논리를 뛰어 넘어 인간적 무대가 될 수 있다는 데 주목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스라엘 극단이 자기 나라의 치부를 건드리는 모습을 보고 한국 연극이 반성의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국제적 연대도 이뤄진다. 한국-중국-일본의 연극 네트워크인 ‘베세토’(베이징-서울-도쿄) 연극제가 13회를 맞아 이 연극제에 합류, 중국의 ‘도화선’과 일본의 ‘오해’로 동참한다. 인도와 한국이 합쳐 세계 초연하는 ‘Pushed’, 프랑스와 한국이 공동 제작하는 ‘요리의 출구’ 등이 기대를 모은다.
한편 국내 참가작은 10편. 브레히트 서거 50주년을 기념해 극단 청우가 올리는 ‘억척 어멈과 그 자식들’, 연희단거리패의 ‘아름다운 남자’등 연극과 할머니와 어머니와 딸을 통해 이어짐의 문제를 짚어 보는 손인영 NOW 무용단의 ‘안팎’ 등 무용이다. 여기에 1980년대 변두리의 가족을 되살려 내는 연극적 한국 무용‘노래하듯이’가 있다. 광기의 충동이 극에 달한다는 새벽 4시48분을 묘사한 극단 풍경의 ‘4ㆍ48 싸이코시스’ 등은 이 제전의 실험성을 상징한다.
또 잘 알려진 동화를 혼성 패러디한 ‘앨리스-토탈 씨어터’, 쇼팽의 음악을 실연하면서 그와 상드가 나눴던 사랑을 그린 ‘쇼팽과 조르쥬 상드’ 등은 마로니에 공원 등지를 오가며 공연 예술의 맛을 알린다. 김철리 예술감독은 “3주 동안 3만의 관객(예상)이, 한국의 순수 예술을 위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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