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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시끄러운 소리'

입력
2006.09.08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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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저녁 공기에서 가을을 성큼 느끼지만 세상 돌아가는 것은 여름의 열기 그대로다. 여름은 곡식을 익혀 풍성한 가을을 선사해 '위대한' 계절로 칭송되지만 지난 여름의 기억들은 씻어내고 싶을 뿐이다. 도박 스캔들 '바다 이야기'가 뿜었던 지난 여름의 열기는 무능 부패 비리의 악취가 섞인 더러운 열기였다.

그렇게 이어진 가을의 초입은 서늘해지기는커녕 갈수록 더 뜨겁다. 전시 작전권 행사 문제의 대립이 대회전으로 향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찬반은 여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에 정부를 상대로 한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하면서 피아와 전ㆍ후방의 전선이 마구 뒤엉켰다.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지명을 둘러싼 소동은 헌법 기관들이 법 절차를 짓밟은 낯 뜨거운 소극이었다. 부끄럽고 시끄럽고 혼란스럽다.

● 시끄러움에 고통 받는 국민

이런 것들을 일 열심히 하느라 빚어지는 건강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길을 막고 물어도 그걸 모를 사람은 없다. 유독 대통령만 다르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리스 동포 간담회에서 "국내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거든 대통령이 열심히 일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라"고 말했다. 또 루마니아에서는 "국민이 희망하는 수준이 아주 높기 때문에 제 인기가 떨어져 있다"고 했다. 은유나 만담으로 들을 수도 있는 노 대통령 특유의 어법이다.

그러나 이 말에서 대통령이 살짝 빠트리고 간 것에 있다. 그 시끄러움으로 고통 받아야 하는 국민의 불행이 언급에서 빠져 있다. 국론이 갈라지고 나라가 휘청거리는 위기를 그저 시끄럽다고만 말할 수 있는 대통령이 국민에게 주는 짜증나는 고통을 빠트렸다.

시끄러운 것은 대통령이 일을 열심히 해서가 아니라 잘 못하기 때문이고, 인기가 떨어진 선행 원인은 국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에게 있다는 사실을 노 대통령은 얼버무렸다.

당면한 여러 문제를 한 마디로 묘사한다면 시끄러운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때 시끄럽다는 문제의 실상과 정도는 실로 심각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 겪는 혼돈과 소용돌이는 시끄럽다고 가볍게 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계속 시끄러운 소리를 들려 주겠다"고 부연했다. 대통령 특유의 가벼운 표현에 현장의 동포들은 가볍게 넘어 갔을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 듣자니 대통령의 말은 수사도 유머도 아니었다. 은유로 쳐도 불쾌한 것이었다.

대통령이 말한 시끄러운 소리는 사실 깨지는 소리라고 해야 보다 맞다. 나라의 기간을 이룰 법적 정신적 도덕적 기율과 가치관이 뒤흔들리면서 내는 굉음이고 파열음이다. 작금의 현안들이 다 그런 것들이다. 그리고 원하든 원치 않든 그 진원은 대통령이고 청와대다. 5월 지방선거의 광적 선거결과가 이를 말했다.

민주당 한화갑 대표가 얼마 전 방송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의 발언을 듣는 방식을 일러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법이라는 게 자기만이 선택하는 것이니까 다른 사람과 구별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상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백전 노장인 그가 계속 이어간 말도 들을 만하다. "국민의 신임이 있으면 가만히 있어도 정치가 제대로 활성화되고 지지자가 모여드는 것이고, 신임이 없으면 움직일수록 표도 더 떨어져 나가고, 아무리 예쁘게 보이려고 해도 밉게만 보이는 거예요. 그걸 파악해야죠."

● 기율과 가치관 깨지는 소리

노 대통령은 그제는 북한 미사일 위기를 말하면서 언론을 탓했다. 대통령은 국민을 칭하고 언론을 끌어들이는 말을 그만 했으면 한다. 대통령도 잘 못할 수 있지만 솔직하고 겸허할 때 인간적 신임을 얻을 수는 있다.

헌법기관 구성문제를 졸속 행정의 한 사례처럼 전락시킨 '전효숙 파동'에 대해 노 대통령이 뭐라 할지 궁금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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