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탱 파주 지음ㆍ한정주 옮김 / 문이당 발행ㆍ9,800원
우리가 흔히 쓰는 ‘예술이야’라는 표현은 예술을 대상으로는 결코 쓰이지 않는 감탄 문구다. 예술이 아닌 것이 예술의 경지를 구사할 때, 그것의 현격한 완성도와 기예를 칭찬하는 일종의 과장법이 ‘예술이야’라는 표현일진대, 그렇다면 과연 예술이란 무엇인가.
프랑스 문단을 대표하는 젊은 작가 마르탱 파주(31ㆍ사진)의 소설 ‘빨간 머리 피오’는 예술이 아닌 것이 어떻게 예술의 권좌에 등극하게 되는지를 통해 예술계의 부조리를 통렬히 풍자한 작품이다. 현대 예술론으로 읽어도 무방할 이 소설은 역설과 아이러니로 가득한 상황을 블랙유머의 언술로 밀고 나가며 위선과 거짓의 세계로 내던져진 예술가의 비극을 그린다.
스물 두 살의 고아, 피오는 생계를 위해 태연히 악행을 저지르는 사기꾼. 신문과 잡지에서 스크랩한 유명 인사들에게 “우리는 당신이 한 일을 알고 있습니다. 돈을 마련할 일주일의 시간을 드리겠습니다”라는 익명의 편지를 보낸 후 파리의 한 공원에 돈을 놔두도록 협박하는 게 그녀의 일이다. 감추고 싶은 게 없으면 사람이 아닌지라, 여덟 명에 한 명꼴로 그녀의 덫에 걸리고, 그녀는 공원에서 그림을 그리는 척하며 그 돈을 가져다 그럭저럭 생계를 유지해간다.
소설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식의 ‘사기열전’을 통해 오늘날 예술을 지배하는 허구의 법칙을 비꼰다. 프랑스 최고의 예술비평가 아베르콩브리에게 사기를 치려던 피오는 “난 자네의 아이디어가 돈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하네.…이건 정말 놀라운 사기인걸. 어떤 면에서는 예술 작품이랄 수도 있겠어”라고 생각하는 그에 의해 되레 천재적 화가로 발탁된다. 사후에도 자신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아베르콩브리는 자신의 장례식에서 피오를 천재적 재능의 화가로 데뷔시키는 기발한 기획을 마련해놓은 채 숨을 거두고, 예술계의 거목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발굴해낸 이 ‘천재화가’는 만인의 관심을 받으며 예술계의 신데렐라가 된다.
그러나 대중과 평론가들의 변덕 앞에 예술가는 종내 무력하다. ‘자신이 행복한 이유를 신문을 통해 알아야 할 판’인 피오가 결국 자살이라는 비극적 최후를 맞게 되는 이유는 이 모든 사기를 기획한 아베르콩브리의 입을 통해 발설된다. “우리는 이상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지난 수 세기 동안 예술에 있어 저주란 검열당하고 추방되는 것이었어. 그런데 오늘날엔 예술에서의 저주란 사랑을 받는 것인가 봐.”(254~255쪽)
감성보다는 이지를 자극하는 이 소설에서 독자는 예술가들이 ‘사랑받는 저주’를 받은 가련한 존재들임을 새로이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사랑은 어찌나 종잡을 수 없는 것인지.
“배심원들은 판결을 내렸었다. 그들은 그녀를 좋아했다. 피고인석에 홀로 앉아 그들로부터 감탄이라는 판결을 받았던 것이다. 언젠가는 누군가가 항소할 것임을, 그래서 아마도 소송이 제기될 것임을 알고 있다. 이 재판관과 배심원들은 늙을 것이며, 시대도 지금과 같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진실의 주인은 바뀔 것이다.”(260~261쪽)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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