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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거문고 줄 꽂아놓고 '조선 영웅과 선비들의 벗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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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거문고 줄 꽂아놓고 '조선 영웅과 선비들의 벗 이야기

입력
2006.09.08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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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 줄 꽂아놓고(옛사람의 사귐) / 이승수 지음 / 돌베개 발행ㆍ9,500원

고려의 충신 정몽주와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은 서로 다른 삶을 산 인물들이다. 정몽주가 죽음을 맞으며 고려의 마지막 불꽃으로 산화했다면, 정도전은 조선 개국의 틀을 만들며 새 시대의 불씨를 지폈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 뜻과 삶이 확연히 달랐지만 두 사람은 진한 우정을 나눴던 동갑내기 벗이었다. 사신으로 명에 함께 갈 때 두 사람은 배 안에서 달을 보며 시를 짓고 한 잔 술에 취해 갑판에서 함께 잠들기도 했다. 한마디로 배포가 맞았다. 정도전이 부모를 여의고 영주 소백산 산골에서 거상을 하고 있을 때, 개성의 정몽주는 ‘맹자’ 한 질을 보내주었다. 정도전은 이 책을 하루에 한 장 또는 반 장씩 읽었다. 뜻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책갈피마다 배어있는 친구의 마음을 오래 느끼고 싶어서였다.

극과 극의 길을 가면서도 서로에 대한 진한 마음을 잃지 않는 것. 그 우정의 실체는 무엇일까. 저자는 그것을 ‘신의’라고 설명한다. 자기와 뜻이 다르다고 억지로 구부리려 하지 않고, 내 눈에 위태롭더라도 그의 뜻을 믿고 존중하는 것, 자유인 그대로의 그를 사모하는 것이 저자가 말하는 신의다.

책은 조선의 영웅과 선비들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지위의 고하는 물론, 생각과 빈부의 차이, 심지어 남녀를 불문하고 품격 높고 아름다운 ‘신의의 벗’으로 살았던 24명의 12색 우정을 그렸다.

“거문고 줄 꽂아놓고 홀연히 잠에 든 제/ 사립문에 개 짖는 소리 반가운 벗 오는구나/ 아희야 점심도 하려니와 탁주 먼저 내어라.” 제목으로 쓴 조선 후기 김창업의 시조에서 책 전체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문헌상으로 찾아낸 이야기만으로도 향기롭지만, ‘우정의 현장’을 직접 찾아 독자에게 묵상의 화두를 던지는 저자의 정성이 그 향기를 더 짙게 한다. 강호의 도리가 아예 흙 속에 묻혀버린 혼탁한 세상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잠시 숨 고를 여유를 주는 책이다.

권오현 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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