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하는 일부 인사들은 미국의 국내법 우선 원칙을 규정한 우루과이라운드 협정 이행법(URAA) 102조와 같은 유사입법을 우리도 제정하자고 주장한다. 한미FTA와 국내법이 충돌하는 경우, 국내법 우선 원칙을 규정함으로써 한미 FTA를 무용지물로 만들자는 취지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URAA 102조의 취지와 국제법적 의미를 오해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UR협정이나 FTA와 같은 조약에 위반하여 국가책임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국내법을 근거로 이를 면할 수 없다는 것이 국제판례상 확립된 원칙이다. 즉 미국의 경우 조약의 일부 내용이 미국법과 충돌하는 경우 그 조항은 무효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국내적으로 법률적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뜻일 뿐이다.
만약 미국이 조약을 위반함으로써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국가가 WTO 등에 제소할 경우, 미국은 국내법을 들어 협정 위반을 정당화할 수는 없는 것이다. WTO 출범 후 미국이 일방적인 무역제재조치인 통상법 301조를 발동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따라서 미국과 같이 국내법 우선 원칙을 법으로 제정할 경우 우리의 필요에 따라 WTO협정에 위배되는 조치들도 마음대로 취하고 한미FTA에서 타결된 내용이더라도 문제가 있는 경우 자유롭게 이를 무효화시킬 수 있으므로 이를 적극 추진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국제법의 기본원칙도 모르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또한 이러한 주장은 우리 헌법에도 정면으로 위배된다. 우리 헌법은 다른 많은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조약과 국내법의 효력이 동등함을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헌법에 이러한 원칙이 반영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판례법에 따라 조약의 자기집행성(self-executing) 여부를 판단하고, 자기집행성이 없는 조약은 국내법으로 변형한 후에야 국내 효력을 인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국내법 우선 조항은 조약과 국내법의 충돌 문제에 대해 관련 국내법의 제정이나 개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절차적 지침에 불과할 뿐이다.
이러한 법체계상의 차이에 따라 한미FTA가 타결되더라도 우리는 칠레, 싱가폴 등과의 FTA에서와 마찬가지로 별도의 이행법을 마련할 필요가 없다.
반면에 미국은 '한미FTA 이행법'을 제정해야 하고 URAA 102조와 같은 국내법 우선 조항을 둘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국내법 조치가 협정에 위반하여 한국의 권익을 침해한다면, 당연히 분쟁해결 절차에 따라 그 책임을 추궁하고 협정에 정한 내용에 따라 시정이나 보상을 요구할 수 있으며, 미국은 자국법을 근거로 항변할 수 없다.
국내법 우선 원칙은 상대 당사국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조항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WTO분쟁에서 패소한 후 그 결과를 수용하기 위해 국내법을 개정해야 했던 많은 사례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는 국제법상 최고원칙은 그 어떤 국내법에도 우선한다. 설사 국내법 우선 원칙을 위한 법이 마련된다 하더라도 이를 근거로 FTA상 의무를 면하거나, 위반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국제법 무용론이나 마찬가지의 위험한 발상이다.
김한수ㆍ외교통상부 FTA국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