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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건강 - 한국 간호교육의 산 역사 '연세대 간호대 10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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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건강 - 한국 간호교육의 산 역사 '연세대 간호대 100주년'

입력
2006.09.07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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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여성 전문교육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연세대 간호대가 1일로 창립 100주년을 맞았다. 1906년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된 세브란스병원 간호부양성소는 이화여대병원의 전신인 보구녀관(保救女館·1903년 설립) 간호부양성소와 함께 서구의 간호시스템을 받아들이고 전국에 보급한 한국 간호 교육의 기둥이다.

이원희 연세대 간호대학장은 “우리 대학의 역사는 한국의 간호교육과 여성전문교육의 역사와 같다”고 말했다. 특히 세브란스병원은 간호부양성소, 간호학과, 간호대로 이어지면서 한국전 와중에도 교육을 중단하지 않고 졸업생을 지속적으로 배출했다는 점에서 긍지가 대단하다.

물론 조선시대에 ‘간호부’를 모집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1910년 배출한 첫 졸업생은 단 1명(김배세)뿐이었다. 처음 학생을 뽑을 때 부모의 동의와 교사(또는 목사)의 추천이 있어야 했고 한글을 읽고 시계를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 등이 입학 자격이었다.

선교사들은 남녀유별이라는 유교사상 때문에 이들이 남자 환자를 돌보는데 20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1907년 일제 통감부에 의해 강제 해산된 대한제국의 군대가 남대문에서 일본군과 총격전을 벌여 부상병들이 세브란스병원에 이송되면서 이 인습은 곧바로 깨져버렸다. 밀려드는 환자에 여성들이 너도 나도 구조의 손길을 내밀었다. 학생들의 여권 인식은 빠르게 성장해 1932년 노예적 교육 반대, 간호사 인격 존중, 식당일과 변소 청소 면제 등을 요구하며 동맹휴학을 했다가 전원 퇴학당한 일도 있었다.

오히려 오래 걸린 것은 남자 간호사에 대한 장벽이다. 1960년대까지 대학이 아예 원서조차 받지 않아 최초의 남성 간호사(노경식)는 1985년에야 배출됐다.

간호부양성소를 설립한 E 쉴즈 여사는 12가지 생활수칙으로 ▦청결하라 ▦환자에 대한 험담을 하지 마라 ▦환자에 적극적 관심을 가져라 같은 당연한 항목과 ▦침묵하라 ▦이름을 기억하라 등을 포함시켰다.

이 학장은 “최근에는 병원 시설이 첨단화해 더 이상 진료 차트를 들고 오가는 간호사는 볼 수 없다”며 “대신 갈수록 상담과 위안을 찾는 환자들의 욕구에 따라 설명간호사를 따로 둘 정도로 카운셀러로서의 간호사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고 달라진 간호사상을 설명했다.

연세대 간호대는 지금까지 5,200명의 간호인력을 배출했다. 또 대한간호협회의 역대 16명 회장 중 11명이 이 대학 출신이다. 김모임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최초의 간호사 장관과, 아시아 최초의 국제간호협회 회장의 기록을 낳았다. 고(故) 홍신영·전산초 선생은 한국 간호학의 대모로 꼽힌다. 연세대 간호대는 최근 간호대 건물 내에 100주년 기념 역사관을 개관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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