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원(25)은 연신 수줍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투박한 사투리로 이야기를 풀어낼 때는 영락없는 경상도 사내였다. 14일 개봉하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포함해 지금까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만 4편. 유머 섞인 조리 있는 답변에서 그가 조금씩 배우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와 닿았다.
강동원은 꽃미남 배우다. 그는 “마냥 좋은 말 같아서 애써 떨쳐낼 생각은 없다”고 말하지만 배우로 성장하는 데는 굴레로 작용할만한 호칭이다. 강동원에게 공지영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옮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꽃’이라는 수식어를 떼내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여전히 수줍은 말끝마다 웃음…
죽음의 그림자에 휩싸인 소설 속의 사형수 윤수는 강동원의 나지막한 경상도 사투리와, 눈물을 왈칵 쏟을 것 같은 눈망울을 통해 스크린에 현현한다. 윤수가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대학교수 유정(이나영)과 머뭇거리다 서로의 아픔을 껴안는 과정도 그의 섬세한 연기로 생명을 얻는다. “청춘 스타 강동원을 진정한 배우로 만들고 싶었고, 결국 그렇게 됐다”는 송해성 감독(‘파이란’ ‘역도산’ 연출)의 단언은 자기 배우에 대한 의례적인 칭찬을 넘어선다. “극한까지 가는 캐릭터라서 연기하면서 막막했죠. 경험해보지 못한 경험들이니까요.”
그는 원작소설을 읽고 난 후에도 ‘쉽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곧바로 출연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배우라면 누구든지 탐낼만한 캐릭터였고 ‘쉬운 역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송 감독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욕심도 작용했다. “감독님도 아마 처음엔 제가 이 역할 제대로 해낼까 걱정을 많이 했을 거예요.”
꼼꼼하기로 소문난 송 감독이 현장을 지휘하다 보니 ‘오케이 사인’이 날 때까지 스무 번 가까이 연기를 반복하는 장면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원했던 고통이기에 4개월간의 촬영 기간은 ‘강동원의 행복한 시간’이었다. “저도 몇 번 끈질기게 재촬영을 요구했더니 감독님이 나중엔 ‘왜? 좋은 데’ 하며 살짝 짜증을 내더군요.”
#영화 찍으며 사형제 깊이 생각해봐…
고향 사투리를 쓰니 연기에 몰입하기는 쉬웠다. 그러나 정작 그는 서울 말 사용을 강하게 주장했다. “느끼하다고 사투리를 쓰래요. (편한 쪽으로) 도망가는 느낌이 들어서 저도 서울 말 자신 있다고 버텼죠.” 결국 감독의 의도대로 됐고, 강동원 자신이 대사를 모두 경상도 사투리로 바꿔야 했다.
관객의 가슴을 누르는 영화이지만 현장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고 한다. 강동원과 이나영은 스태프와 수시로 술잔을 주고 받으며 일을 즐겼다. “술에 취한 한 스태프가 막 뽑은 제 자가용 지붕서 뛰어다니며 ‘발자국’ 세 개를 남겼어요. 소속사서 큰 마음 먹고 사준 건데 지금도 안 펴져요. 정말 서로 허물 없이 지낸 기간이었죠.”
그는 개봉일이라는 심판의 날을 기다리고 있으면서도 마음이 편하다. 너무나 재미있게 연기에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에서다. “과정이 너무 좋아서 작품 결과에 대한 욕심조차 나지 않았어요. 연기도 많이 배웠고요.”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지금도 가끔 사형수가 되는 꿈을 꾸는데, 깨고 나면 ‘그때 이렇게 연기 할 걸’이라는 후회가 밀려온다고.
배우로 데뷔한지 만 3년이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많은 사람 앞에 서면 말문이 턱 막힌다.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조심스럽고 곡해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A형의 특징이다. 그러나 그의 혈액형은 B형. “저 혈액형별 성격 그런 것 안 믿어요. 그래도 이기적인 B형 성격이 살짝 나올 때도 있는 것 같아요.”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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