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파리에서 전시회를 했다. 그걸 기화로 여럿이 파리에 갔다. 그 참에 프랑스 주변 나라를 돌아보자고 유레일패스를 끊어 갔지만 개봉도 하지 않았다. 다들 나이가 들어 기운도 달렸고, 발을 묶어 놓을 만큼 파리가 매력 덩어리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슬렁어슬렁 파리의 이 거리 저 거리를 쏘다녔다. 한번은 오페라 거리를 지나다가 오가는 사람들로 혼잡한 대로의 빌딩 옆에 갈색 잠바가 떨어져 있는 걸 봤다. 낡아 보였지만 버려진 느낌은 없었다.
웬 걸까? 멀거니 내려다보니 그 위에 동전들이 흩어져 있었다. 아하! 그곳에 터를 잡은 누군가가 자리를 비우면서 제 옷을 두고 간 것이다. 말하자면 무인 적선소인 것이다. 시험 삼아 그 옆에 내 옷을 던져둬 보고 싶었다.
어느 저녁의 아트교가 생각난다. 한 청년이 다리 난간에 등댄 채 바닥에 앉아 피리를 불고 있었다. 나는 발을 멈추고 동전을 꺼냈다. 그런데 모금 그릇이라는 게 그의 발치에 있는 코카콜라 깡통인가 보았다.
쭈뼛거리다 쪼그려 앉아 콜라 깡통의 좁다란 구멍에 동전을 넣으려하자 그가 손을 휘저었다. 피리를 입에 문 채. 우리 둘 다 얼굴이 벌게졌다. 그는 거리의 악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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