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한 차기 일본총리 후보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에 대한 반기문 외교부 장관의 한일정상회담 제안설로 '대일 이중외교' 논란이 일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일단 도쿄신문 등 일본 언론의 관련 보도를 부인했지만, 그 동안 외교부 안팎의 분위기를 종합할 때 표면적인 대일 강경자세와는 달리 물밑으로는 일본의 차기총리를 향한 저자세 외교를 펴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고 있다.
도쿄신문 등은 3일 한일 양국 소식통을 인용, 반 장관이 지난달 중순 고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전 총리 조문 당시 아베 장관을 만나 중단된 양국 정상회담을 재개하려는 노무현 대통령의 의향을 전달하고, 총리 취임 후 방한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11월 아ㆍ태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 정상회담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도 대두됐다.
외교부는 그러나 정상회담 제의는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반 장관은 다만 "한일관계 갈등요인이 빠른 시일 내 해소돼 한일 정부간 정상적인 교류가 재개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언급했다는 것이다.
총리로 선출되지도 않은 인사에게 정상회담을 제의하는 게 외교 관례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부인은 예견된 반응이다.
그러나 반 장관의 언급만으로도 정상회담 제안의 메시지로 해석될 여지가 없지 않다. 양국 정상간 '셔틀외교'까지 중단된 '비상상황'에서 '정상적 교류 복원'으로 간다는 것은 정상회담을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신사참배와 교과서 파동 등 일본측 도발에 따라 외교경색이 심화된 상황에서 우리측이 먼저 '정상적 교류'를 언급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무성하다. 반 장관의 조문외교 당시 우리측 요청에 의해 아베 장관과의 면담이 이루어졌다는 점도 우리가 먼저 화해를 구하고 나섰다는 비판을 살 수 있다.
이에 대해 아베 장관은 한국이 역사문제를 들고 나온다면 정상회담에 신중한 입장, 즉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할 것이라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아베 장관에 대한 우리 정부의 적극적 자세는 '아베 체제'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반 장관이 조문외교 직전 외교협회에서 "아베 장관은 신사참배에 대한 기본입장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와 같지만, 국내외 여론을 감안해 실제로 신사참배를 하지는 않을 것이란 전문가들의 관측이 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분석이다.
한일관계 정상화는 물론 필요하지만, 이런 식의 접근은 그 동안 우리 정부의 대일 강경기조가 결국 국내용에 불과했다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향후 아베 체제가 출범해도 양국 관계를 정상화하는데 오히려 장애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그간 정부의 대일외교는 원칙과 기준이 없는 애매모호한 측면이 적지 않았다"며 "우리측이 정상회담을 먼저 추구하는 듯한 태도를 취할 경우 일본에 잘못된 신호를 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정진황 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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