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히토(明仁) 일본 천황의 차남인 아키시노미야(秋篠宮ㆍ41)의 부인 기코(紀子ㆍ40)의 출산을 앞두고 일본 전체가 긴장하고 있다. 아키시노미야가 출생한 이후 41년 동안 남자 자손이 끊긴 상황에서 맞는 황실의 출산이어서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기코는 6일 도쿄(東京)의 병원에서 제왕절개 수술로 출산할 예정이다. 당초 9월 하순께로 예정했지만 태반 일부가 자궁 입구 쪽에 위치하는 전치태반으로 밝혀져 앞당겨졌다.
관심은 ‘아들이냐 딸이냐’ 이다. 기코가 아들을 낳는다면 일본 사회의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 그러나 딸일 경우 문제는 복잡해진다.
일본 국민들은 왕위 계승 1순위인 나루히토(德仁ㆍ46) 황태자에게 아들이 없는 것을 크게 걱정해왔다. 이 때문에 최근까지 일본 정부와 국회에서는 나루히토의 장녀인 아이코(愛子ㆍ5)가 천황이 될 수 있는 쪽으로 황실전범을 개정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었다. 황실전범은 왕위 계승순위 등 황실의 제도ㆍ구성 등을 규정한 법률이다.
지난해 9월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황실의 불안을 방치할 수 없다는 여론을 등에 업고 황실전범 개정을 적극 밀어붙였다. 고이즈미 총리의 자문단은 지난해 11월 여성 천황ㆍ여계 천황의 용인, 장자우선 등을 골자로 하는 최종보고서를 만들었고, 이 내용이 반영된 황실전범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둘러싸고 치열한 정치적 공방이 벌어졌다.
만일 여성 천황과 여계 천황을 용인하는 쪽으로 황실전범이 개정된다면 ‘만세일계(萬世一系)’를 내세우는 일본의 천황제도에 변화가 생기는 중대한 사건이다.
기코의 임신은 이처럼 미묘한 상황에서 공표됐다. 황실전범 개정 논의는 갑자기 수그러들었고, ‘아들이냐 딸이냐’는 출산 결과에 관심이 집중되게 된 것이다.
한편 일본 국민들은 나루히토 황태자의 부인 마사코(雅子ㆍ43)에 동정을 보내고 있다. 외교관 출신의 엘리트로 1993년 황태자비가 된 마사코는 그 동안 엄격한 황실생활과 후세에 대한 집요한 압력에 시달려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황실전범 개정으로 딸 아이코의 미래가 열리는 듯했지만 기코의 임신으로 모든 게 불투명해졌다.
대학 교수의 딸인 기코는 일본 귀족대학인 가쿠슈인(學習院)대 재학 중 1년 선배였던 아키시노미야의 프로포즈를 받아 1990년 결혼했다. 이미 두 딸의 어머니인 기코의 이번 출산에 천황 자리가 걸려 있는 것이다.
도쿄=김철훈 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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