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구미 3공단에 위치한 ㈜영도벨벳은 지역 중소기업체이면서도 세계 최고의 벨벳생산업체다. 산업자원부는 최근 이 회사 주력제품인 코튼벨벳과 폴리벨벳을 차세대 세계일류상품으로 선정했다.
차세대 세계일류상품은 3년내 세계시장 점유율 5위안에 들 수 있는 품목이어야 뽑힐 수 있다. 대구 경북지역에서는 영도벨벳이 유일하게 선정됐다.
'한 물 갔다'는 섬유분야에서 영도벨벳이 세계적 기업을 만든 이는 유병선(65) 대표다. 유 대표는 남편(고 이원화 회장)과 함께 1965년 대구 수성구에서 기계 단 2대를 놓고 창업했다. 처음엔 방한화로 쓰이는 보들보들한 털신용 털을 만들었지만, 자연스럽게 보풀이 있는 벨벳사업으로 이어졌다.
해외에서는 벨벳이 실크보다 고급섬유로 인정 받는다. 품질의 우수성으로 영도벨벳도 곧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80년대이후 연평균 400만달러에 달하는 수출가도를 달렸고, 독자브랜드로 만들어낸 '쓰리 이글(Three eagle)'은 금새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위기가 왔다. "1995년 리스를 통해 대규모 시설투자를 했다가 IMF를 맞았습니다. 부채는 늘고 금리는 뛰고 게다가 남미국가의 모라토리움 선언으로 수출시장까지 막혔지요. 모두 회생불능이라고 했습니다."
90년대초 이후 회사업무에서 손을 뗐던 유 대표가 다시 경영전면에 나섰다. "남편도 절망상태 였습니다. 그냥 회사를 접고 싶은 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오기가 생기더군요"
유 대표는 남편을 대신해 회사에 다시 출근하던 첫날 전 임원들의 사표를 받았다. 회사 소유든, 개인 소유든 부동산은 모조리 팔아 빚을 줄였다. 요지였던 대구공장을 처분해 땅값이 싼 현 구미공장으로 이전한 것도 이 때였다. 400여명에 이르는 직원도 절반으로 줄였다.
하지만 뼈를 깎는 구조조정 속에서도 해외시장개척은 오히려 강화했고, 이 같은 공격적 마케팅은 2002년부터 결실을 내기 시작했다. 2004년엔 워크아웃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영도벨벳은 지금 제2의 번영을 누리고있다. 독자브랜드를 가진 국내 유일의 벨벳 생산업체로, 특히 재직에서 가공까지 일관공정을 갖춘 세계 최대 벨벳업체로 성장했다.
지난해엔 3,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최근 오일달러가 넘치는 중동에서는 벨벳이 여성들의 결혼필수품으로 인기를 끌면서 수출이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벨벳은 우아함과 세련미가 넘치는 최상급 섬유지요. 이젠 옷 뿐 아니라 구두 핸드백 소파 등 다양한 제품이 나오고 있지요. 특히 벨벳에 그림을 넣은 벨벳벽지는 제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것입니다."
스스로 일을 좋아하는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다고 말하는 유 대표는 "한 우물만을 파온 경험과 앞선 노하우를 바탕으로 벨벳의 응용영역을 넓혀 세계를 향해 대중적이고 저렴한 제품들을 선보일 작정"이라고 말했다.
대구=유명상 기자 ms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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