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세계 국가 중 11위에서 12위로 뒷걸음질쳤다고 한다. 신흥 국가들이 우리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반면, 우리의 잠재성장률은 점차 감소하고 있으니 이런 일은 또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부는 오히려 우리의 미래를 장밋빛으로 채색한 ‘비전 2030’을 내놓았다. 25년 후 우리의 삶의 질이 세계에서 10위가 된다는 전망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비전 2030’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별반 해답을 보여 주지 않고 있다.
●인적자본 없이 '비전 2030' 없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비전이 달성되려면 국민 1인 당 생산성이 증가해야 한다. 오늘날의 지식기반사회에서 생산성의 증가는 인적자본의 축적이 있어야 가능하다. 한국의 경우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인적자본의 형성은 교육을 통해 이루어진다. 지금까지의 우리의 경제성장은 일반 대중교육의 성공에 기인한 바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조사한 바로는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의 학력은 세계 최상위권이다. 평준화를 목표로 한 초ㆍ중등교육이 우리 경제의 양적 성장에 기여해 왔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이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어 가려면 양적 성장이 아니라 질적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 질적 성장은 대학교육의 고도화로만이 성취될 수 있다. 국제적으로 인정 받는 기관의 국가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학의 경쟁력 수준은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고등학생들의 대학진학률은 세계에서 1위를 보이는 반면 대학에 대한 투자는 극히 열악하여 이러한 결과를 보인 셈이다. 우리나라 교육 예산 중 대학에 투여되는 금액은 초ㆍ중등교육에 투여되는 금액의 20%에도 미치지 못하며, 1인 당 대학생 교육비가 OECD 평균의 절반에도 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 주고 있다.
대학에 대한 투자의 효율성을 결코 낮게 평가해서는 아니 된다. 1990년대 후반 우리 정부는 연구중심대학을 키우기 위해 주요 대학의 대학원 교육을 지원한 적이 있다. 그 후 10년이 채 안 된 지금 그 당시 지원을 받았던 Y대의 경우 물리학과와 화학과가 연구업적 면에서 세계대학 중 20위 권에 도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대학원생들에 대한 지원에 국한되어 있는 BK21 프로그램도 한국의 대학들이 경쟁적으로 연구업적을 내놓게 하는 유인책이 되고 있다. S대와 Y대는 학과 수준이 아니라 이공계 전체의 연구업적(SCI)에서 이미 세계 100위 권에 도달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정부가 대학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경우 그 효과는 비록 시간은 걸리지만 확실히 나타나게 됨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학은 대부분 사립이다. 사립대학은 등록금과 기부금으로 재정을 운영해 가고 있다. 그런데 등록금은 대학이 마음대로 올릴 수가 없다.
물가를 핑계로 정부가 제재를 가하고 또 학생들이 인상 반대 투쟁을 하기 때문이다. 기부문화가 정립되어 있지 않은 우리나라의 경우 기부금의 비중이 선진국에 비해 워낙 낮은데, 최근 기업의 지배구조가 투명해지면서 기업의 대학에 대한 기부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기여입학제가 허용되지 않는 한 개인들의 기부행위도 증가하지 않을 것이다.
●대학 투자로 국가목표 성취를
이러한 상황에서 대학이 의존할 수 있는 곳은 정부뿐이다. 미국이나 일본의 사립대학들이 학교 재정의 20%내지 30%를 정부에 의존하고 있는데 비해 우리나라의 사립대학들은 너무 낮은 정부지원(예산의 5%이내)을 받고 있다.
이제 정부가 대학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여 고도의 인적자본 형성에 기여함으로써 삶의 질과 사회복지수준을 높이자는 국가적 목표를 현실적으로 성취하는 길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영선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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