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의식 글·그림 / 마루벌 발행·30,000원
성이 솟아오르고 황산벌 전투의 진이 펼쳐진다. 거북선이 힘차게 노를 젓는다. 다부진 몸집, 결연한 눈매를 가진 장수들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우리의 빛깔과 모양으로 빚어낸 첫 창작 팝업(Pop-up)북이 나왔다. 번역서 일색인 팝업북 시장에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입체적인 신기함에 읽는, 아니 보는 재미가 남다른 책이 팝업북. 하지만 제작과정이 까다롭고 노하우가 없는 탓에 외국의 것만 슬쩍슬쩍 가져다 본 것이 전부였다.
책은 우리 역사를 이끈 26명의 장수들을 전면에 드러내고 곳곳에 숨겨놓았다. 한토막 장수 열전 이랄까. 요즘 들어 더 친숙해진 삼국시대의 인물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소개가 짧아도 아쉽진 않다. 들춰보고 빼내보고 다양한 캐릭터들을 들여다 보는 것만으로도 책장 넘기기가 즐겁다. 노 젓고 포 쏘는 병사들이 빼곡이 들어찬 거북선 안의 치밀한 풍경도 흐뭇하다.
저자는 ‘팝업북의 마술사’ 로버트 사부다의 책과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한다. 팝업의 기술이 그처럼 화려하지 않을진 몰라도 캐릭터나 화면의 구성은 자랑할만한 수준이다. 재작년 국내 출판된 사부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초판 매진을 기록했다. 잘 만들어진 팝업북에 대한 독자의 욕구가 작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때문에 이 책의 도전이 신선하고 더 의미있게 느껴진다.
값은 만만치 않다. 무심히 책을 찢고, 부모가 ‘주몽’이나 ‘연개소문’을 볼 때 어린이TV를 보겠다고 떼쓰는 아이라면 서두르지 않는 게 좋겠다. 십중팔구 테이프로 도배된 장수들의 모습에 마음이 상할 테니.
박선영기자 philo9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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