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을엔 꿈을 입어보자, 현실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최근 미국판 보그는 영화 ‘마리 앙트와네트’의 주인공으로 분한 커스틴 던스트를 표지 모델로 삼았다. 핑크색 실크 드레스와 한껏 치켜세운 헤어스타일로 꾸민 화려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영국판 엘르는 나폴레옹 시대 군복 스타일 가죽점퍼를 걸친 케이트 허드슨을 앞세웠다.
패션 잡지들이 로코코 시대와 나폴레옹 시대를 들먹이는 이유는 이번 가을ㆍ겨울 하이패션의 패션 테마가 ‘상류사회’이기 때문이다. ‘나폴레옹과 그의 연인들’을 주제로 금색 휘장을 수놓은 나폴레옹 시대의 장교복과 조세핀을 연상시키는 섬세한 엠파이어 드레스를 무대에 올린 돌체 & 가바나, 영국 귀족들의 여우사냥을 모티브로 한 디스퀘어드, 영국 근위병의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표현한 발렌시아가, 스코틀랜드 귀족 가문의 표시였던 타탄 체크를 응용한 모스키노와 알렉산더 맥퀸, 귀족들의 승마를 주제로 한 에르메스, 15~17세기 스칸디나비아 왕실에서 영감을 받은 크리스챤 라크로와 등등. 유명 브랜드의 패션쇼는 온통 상류사회를 그려내기에 바빴다.
하이패션의 화려한 패션쇼 무대가 아니더라도 이번 가을ㆍ겨울 패션 트렌드에는 유난히 ‘전통적이고, 고급스럽게’라는 수식어가 많다. 시간이 흔적이 느껴지는 전통적인 인상을 주어야 하고 소재 또한 최고급이 사용되고 섬세한 수작업의 흔적이 발견되어야 한다. 실제로 고급스러운 의상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드레스 한 벌의 자수를 놓는 데에만 석 달이 걸릴 정도로 공들인 수공예가 들어가야 한단다.
그만큼 귀족적이고 고급스러운 의상들은 가격은 비싼 편이지만 그다지 유행을 타지 않는 스타일이라 두고두고 입을 수 있는 ‘클래식’이다. 그렇다면 상류사회 트랜드를 어떻게 즐겨야 할까.
▲ 마리 앙트와네트 & 조세핀
로코코시대의 요정이었지만 사치와 방종으로 프랑스 혁명의 이슬로 사라져 간 비운의 여인 마리 앙트와네트. 그녀와 더불어 패션 아이콘으로 등장한 나폴레옹의 연인 조세핀. 그녀들처럼 7폭의 스커트를 걸칠 필요는 없다. 반짝이는 소재와 여러 겹의 러플 장식을 응용한다. 단 장식은 목과 가슴선, 소매단 정도로 제한할 것.
▲ 타탄 체크
체크는 언제나 애용되는 무늬다. 그 중에서 빨간색 체크무늬는 영국을 상징하는 무늬로 오랜 전통과 자부심을 상징한다. 타탄 체크는 영국의 전통의상에 사용되는 무늬였지만 요즘은 스쿨걸룩에도 애용될 정도로 누구나,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무늬가 됐다. 남성치마 ‘킬트’를 연상시키는 미니스커트, 체크무늬 트렌치코트가 이번 계절 대표적인 체크 아이템.
▲ 제복&승마복
장교 유니폼을 연상시키는 금색 단추가 달린 재킷은 가장 사랑 받는 아이템이다. 겹으로 접힌 깃 위로 세로로 줄줄이 달린 금장 단추 장식 재킷은 매니쉬 룩을 추구하는 여성복의 중심에 서 있다. 그렇다고 새로 재킷을 장만해야 하나 고민할 필요는 없다. 기존 재킷에 단추를 금속단추를 바꿔달거나 가슴에 휘장무늬를 수놓은 브로치 하나만 달아도 얼마든지 제복의 이미지를 낼 수 있으니까.
귀족들의 스포츠였던 승마를 즐기기는 어렵지만 승마복 스타일의 스키니 진이나 크롭트 팬츠, 가죽점퍼, 털장식으로 승마복 흉내를 낼 수 있다. 훨씬 근엄하고 엄격한 승마룩을 선보인 ‘에르메스’ 스타일을 눈여겨보도록.
상류사회를 꿈꾸는 하이퀄리티 패션. 가짜 명품 사건과 ‘된장녀’ 소동으로 잠시 손가락질을 받는 신세가 되기도 했지만 그 생명은 길고 강하다. 사람들은 시민혁명 이전의 귀족주의라는 구시대적인 유행경향을 동경하고 우러러봐야 할 대상으로 열망하고 있는 게 아닌지. 드라마 ‘궁’을 보면서 든 생각. 만약 우리나라의 왕가가 명맥을 이어갔더라면 우리에게도 유럽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존경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위대한 하이퀄리티 문화가 폭넓게 살아있지 않았을까.
패션은 꿈이다. ‘있는 척’이 아니라 언젠가는 진짜 멋지게 살 수 있으리라는 팍팍한 현실을 이겨 낼 꿈을 꾸게 만든다. ‘열심히 일한 나에게 주는 선물’, 이번 가을 패션으로 작은 꿈을 누려 보시라.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suzanpark@dreamwiz.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