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된 문제들은 내가 오랫동안 수험생들을 지도하면서 틈틈이 모아 둔 1만여 문제와 국내ㆍ외 20여종의 참고서 중에서 실력 양성과 앞으로의 예상문제를 겸한 좋은 문제들만을 정선(精選)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대학에서 다루는 문제들을 고교 학생들의 사정에 알맞게 고쳐 만들어서 보충한 것이다.’
1966년 8월31일 대학입시용 수학참고서‘수학의 정석(定石)’을 처음 내놓은 홍성대 저자는 책 머리말 뒷부분에 이렇게 적었다. 30세 청년 수학 강사는 당시 이처럼 순수한 열정으로 이 책을 만들었다. ‘수학의 정석’이 31일로 출간 40년을 맞는다. “바이블(성경)을 제외하곤 가장 많이 팔린 책”이라는 출판업계의 설명처럼 이 책은 3,700만부나 팔렸다.
지금까지 팔린 책을 쌓아올리면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산(8853.5m) 125개의 높이가 된다. 저자는 올해 70세가 됐다. 자립형 사립고인 전주 상산고 이사장 직함도 갖고 있다. 29일 오후 한국일보와 만난 홍 이사장은 2시간여 동안 ‘수학의 정석사(史)’와 자신의 교육관, 사학에 대한 단상 등을 털어놓았다. 그는 “‘수학의 정석’은 내 책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책”이라고 말했다.
_‘수학의 정석’을 처음 내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당시 시중에는 고교생들이 갈망하는 수학 참고서가 거의 없었어요. 대학(서울대 수학과)에 다니면서 학비를 벌기 위해 과외와 학원강의를 한 저도 같은 생각이었지요. 강의가 쌓이면서 그 동안 모아놓았던 자료를 버리기 아까웠던 차에 직접 책을 쓰기로 결심했어요. 광화문과 청계천 일대 서점을 샅샅이 뒤져 관련 서적을 구했고 미국 영국 일본 등에 있는 지인들에게 편지를 써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어요. 27세 때부터 준비해 30세에 이 책을 냈어요. 꼬박 3년이 걸렸습니다.”
_얼마나 팔렸습니까.
“첫해에만 3만5,000부가 팔렸어요. 그 해 8월말에 책이 처음 나왔으니 불과 4개월 만이지요. 출판업계가 깜짝 놀랐어요. 당시에는 활판인쇄 시대여서 한번에 최대 5,000부 이상 찍어낼 수 없었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90년대 중반까지는 1년에 대략 150만~180만권이 나갔어요. 이후 지금까지 매년 100만~110만원선을 유지하고 있어 전체적으로는 3,700만권 가량 팔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요. 정확한 판매부수는 집계한 적이 없습니다.”
_에피소드도 있을 텐데요.
“몇 해 전 한 케이블TV에 나온 수학학원 강사가 내 책을 폄하하는 발언을 했어요. 많아야 50만권 팔린다는 내용이었지요. 참으려고 했지만 인신공격적인 내용도 있고 의도적으로 깎아내려 맞대응 했습니다. 세무서에 신고한 인세수입 증명원을 떼 제시하니 ‘잘못했다’고 사과하더군요. ‘수학의 정석’으로 학원에서 강의하는 강사를 한 자리에 초청해 식사 한끼 할 생각이었는데 알아보니 전국에 8,000명이나 되더군요. 스스로 놀라 포기한 적도 있어요.”
_내용이 일본 등 외국 서적을 베꼈다는 주장이 지금도 나오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사실입니다. 책의 내용이 충실하다 보니 나온 이야기라고 주위에서 말합디다. 개의치 않습니다. 그런데 이 기회에 할말은 해야겠어요. 표절은 체제나 이론, 설명을 그대로 옮기는 것입니다. 수학의 정석을 자세히 살펴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이론전개 등에서 외국 서적과 같은 부분이 단 1개라도 있으면 앞으로 책을 내지 않겠습니다.”
_입시제도가 수시로 바뀌고 있지만 ‘수학의 정석’은 롱런하고 있습니다. 비결은 무엇입니까.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우선 각 분야마다 쉬운 문제로 시작해 점차 어려운 문제로 가기 때문에 누구나 무리 없이 학습할 수 있어요. 출제 가능한 모든 유형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 적중률도 높습니다. 새로운 문제도 수시로 보완하고 있어요. 새 문제의 경우 20명이 달라붙어 철저하게 검증합니다. 혼자서도 공부할 수 있는 참고서라는 장점도 있는 것 같아요.”
_2001년도 개정판부터 책 뒷면에 ‘도운이 이창형, 홍재현’이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공저 체제로 바뀐 겁니까.
“사위와 딸입니다. 둘 다 서울대 수학과를 나온 후배이기도 하구요. 두 사람은 대학 동기 입니다. 딸은 서울대 수리연구소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많은 아이디어를 주고 있어요. 사위는 대기업에 다녔지만 그만두고 현재 이 책을 내는 성지출판사 기획실장을 맡아 책 개정 작업에 적극 관여하고 있습니다. (홍 이사장 자신은 성지출판사 회장을 맡고 있다) 든든하지요. 앞으로 좋은 필진을 찾아 좀더 나은 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생각입니다.”
_학생들에게 수학은 여전히 어려운 과목입니다. 수학을 잘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열심히 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있겠습니까. 다만 경험상 몇 가지는 조언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수학공부는 눈으로 풀어서는 안됩니다. 종이에 직접 쓰면서 풀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계산 속도가 빨라질 뿐 아니라 계산도 정확해 집니다. 평소에 깨닫지 못했던 이해력도 길러집니다.
자기 힘으로 풀어야 한다는 점도 말하고 싶어요. 바로 풀이를 본다든지 금방 옆 사람에게 물어보는 학습태도로는 절대로 수학실력이 향상될 수 없어요. 특히 수학은 머리로 생각하고, 생각으로써 능력을 단련하는 것이기 때문에 복습보다는 예습 중심의 학습방법이 효과적입니다.”
_수학은 상급 학년 공부를 미리 하는 선행학습이 심한 과목입니다. 바람직한 것인지요.
“개인적으로는 선행학습을 반대합니다. 단적인 예가 이런 것입니다. 상산고의 경우 중학교 때 선행학습을 하지 않은 학생의 성적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크게 올라갔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학년에 맞춰 꾸준히 공부해 온 학생들이 결국 두각을 나타내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있는 것이지요. 어려운 문제를 먼저 공부하는 것보다 혼자서 풀이에 열중하면서 내실을 쌓아가는 게 더 중요합니다.”
_대학수학능력시험 수리 영역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습니다.
“수학은 과정이 중요한데 수능 수리 영역은 그렇지 않아요. 2분에 1문항 꼴로 풀어야 고득점을 받을 수 있는 구조입니다. 문항수가 너무 많아요. 수험생들은 수능 성격에 맞춰 답을 찾아내는 데만 골몰하게 됩니다. 또 학생들의 수학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대학별로 시험을 치러야 한다고 봅니다.”
_2008학년도 대입제도는 어떻게 보고 있나요.
“한마디로 실패작입니다. 사교육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날 겁니다. 내신을 중시하다 보니 학원과 개인과외를 더 받게 되고, 여기에다 수능 준비도 해야 하는 시스템입니다.”
_최근에는 사립학교법 재개정 요구에도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부 사학의 비리는 마땅히 발본색원 돼야 합니다. 하지만 그 방법이 개정 사학법처럼 돼서는 곤란합니다. 지난 봄 감사원의 사학비리 감사 결과, 3,250여개의 사학 중 22개 사학이 검찰에 고발됐어요. 전체의 0.7% 입니다. 적어도 사학은 부정의 복마전은 아니라는 의미지요. 더구나 사학은 감사원과 관할 교육청 감사까지 받습니다. 사학법은 반드시 재개정돼야 합니다.”
■ 홍성대씨 "학생들 덕에 번 돈 돌려줘야"
‘수학의 정석’과 전주 상산고는 뗄 수 없는 관계다. 홍성대 이사장이 ‘수학의 정석’ 인세로 만든 사립학교가 상산고이기 때문이다. 홍 이사장의 아호 ‘상산(象山)’을 따서 이름 붙인 이 학교는 1981년 설립됐다. 22년 뒤인 2003년 자립형 사립고로 전환했다. 당시 주위 반대가 심했지만 “학생들 덕분에 번 돈을 학생들에게 다시 돌려주는 게 옳다”고 고집해 학교를 만들었다.
그는 지금까지 상산고에 총 1,000억원이 넘는 돈을 쏟아 부었다. 교육계에서는 이 돈의 상당 부분이 ‘수학의 정석’ 판매 수익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홍 이사장은 이 학교를 자신의 ‘분신’으로 여기고 있다. 최근 3년간 300억원을 투자해 여학생 기숙사와 체육관을 지었을 정도다. 이 학교는 서울 등 외지 학생이 전체의 84%나 된다.
그는 98년에는 40억원의 사재를 출연해 서울대에 1,200여평 규모의 ‘상산수리과학관’을 지어 기증했다. 최초의 개인 기증 건물이라는 게 서울대측 설명이다. 이 건물에는 홍 이사장 딸이 연구원으로 있는 수리연구소를 비롯, 대역해석학연구센터 통계연구소 등 5개 연구소와 수학도서관이 들어 있다. ‘수학 연구 전문 빌딩’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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