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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칼럼] 추미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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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칼럼] 추미애 생각

입력
2006.08.3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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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해 전 민주당이 쪼개졌을 때 추미애 전 의원이 분당파를 좇아 열린우리당에 둥지를 틀었다면, 그의 정치적 운명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는 무난히 3선 의원이 됐을 테고, 정치를 함께 시작한 몇몇 동료들이 그랬듯 17대 총선 후보공천 과정에 개입해 제 사람들을 당에 심을 수도 있었을 테고, 십상팔구 자신의 이력서에 국무위원 경력 한 줄을 보탤 수 있었을 게다.

그러나 그는 민주당에 남았고, 대통령 탄핵소추의 맞바람이 모든 쟁점을 삼켜버린 2004년 4.15총선에서 무명의 정치 신인에게 졌고, 미국으로 건너가 국제관계에 대한 안목을 키우며 두 해를 보냈다. 그리고 열흘 전 귀국했다.

● '노무현표' 부채 없어

3선에 실패한 것은 정치에 발을 담근 이래 그가 겪은 첫 좌절이었겠지만, 17대 국회에서 배제돼 있었다는 사실이 그의 정치 역정에 궁극적으로 마이너스가 될지는 알 수 없다. 총선 뒤 승승장구한 그의 옛 동료들의 지금 처지를 보면 더욱 그렇다.

지난 대통령 선거 전날 추 전 의원과 함께 노무현 후보에 의해 차차기 대통령감으로 거론됨으로써 정몽준 의원의 노 후보 지지 철회 선언을 가져오게 한 정동영 전 의원은 우리당의 실세 당의장으로서,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 겸 통일부 장관으로서 달디단 한 시절을 보냈지만, 오늘날 그의 정치적 미래를 장밋빛으로 그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복지부 장관을 지낸 김근태 우리당 의장이나 '실세 총리'로 군림했던 이해찬 의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정치적 미래에 드리워진 그늘은 노 대통령의 그늘이다. 대통령과의 친소에선 차이가 있지만, 이들은 모두 정치인 출신 국무위원으로서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정치적 파산에 대해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국무위원 해본 것으로 만족하고 이쯤에서 마음을 비우지 않는 한, 이 경력은 이들의 정치 역정에 가볍지 않은 짐으로 남을 것이다.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중앙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뒤 '거물'로 자란 유시민 복지부 장관이나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에게도, '노무현표'는 부채로 남을 것이다.

반면에 추 전 의원에게는 이런 부채가 없다. 세간에 알려진 대로 여권 핵심부와 추 전 의원 사이의 관계가 원만해졌다 해도 마찬가지다. 그는 기존 지지자들을 내침으로써 새 지지자를 얻겠다는 (결과적으로 실패한) 정치공학에 가담하지 않은 원칙주의자로 남았고, 그 결과 민주화 시동 이후 가장 뻔뻔한 정권으로부터 비껴 서 있게 됐다. 그것이 추 전 의원에게 적극적 자산이 되지는 않을지라도, 적어도 부채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추미애라는 이름은 4.15총선이 제도권 정치 뒤꼍으로 내몬 숱한 이름들 가운데서 아직도 다수 유권자들의 뇌리에 깊이 박혀있는 드문 이름이다. 그의 복귀를 바라는 여론이 제법 두터운 것은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그가 일관되게 보여준 원칙적이고도 합리적인 몸가짐 때문일 것이다.

● 창조적 소수에 속하길

권력 핵심부 바깥에 있던 시절 원칙과 합리성으로 누구보다도 큰 매력을 뿜어냈던 정치인 노무현이 지난 3년 반 세월 동안 생뚱맞은 행동거지와 거듭된 실정으로 '개혁'이라는 말을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린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또 다른 정치인 아무개에게 어떤 기대를 건다는 것이 부질없게 여겨지기도 한다.

사실 한 사회를 합리성의 레일 위에서 조금씩 앞으로 떠미는 일이, 정치인이든 뭐든 어떤 개인들의 의지만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은 아닐 테다. 그 개인들 역시 구조 속의 개인들일 테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구조라고 부르는 것의 견고함을 평생 강조한 19세기 논객이 어느 대목에서 정색을 하고 우리에게 상기시켰듯,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은 결국 사람 개개인이다. 그 개개인은 구조의 제약 속에서 움직이면서 그 구조를 바꿔나간다. 정치인 추미애가 구조에 적응하며 구조를 갱신하는 창조적 소수에 속했으면 한다. 그의 귀국을 환영한다.

고종석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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