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미의 관심 속에서 진행된 일본 동종 기업간의 적대적 인수ㆍ합병(M&A)이 결국 실패로 끝났다.
일본 제지업계 1위로, 5위 업체인 호쿠에츠(北越)제지를 합병하기 위해 지난 2일부터 주식공개매집(TOB)을 추진해 온 오지(王子)제지는 29일 “매집 목표(호쿠에츠 주식의 50.4%)를 달성하는 것이 곤란하게 됐다”며 사실상 패배를 인정했다.
오지제지는 지난달 호쿠에츠에 경영통합을 돌연 제안했다. 일본의 기업풍토에선 상상하기 어려웠던 공격적인 합병 제안이었다. 호쿠에츠가 강하게 반발하며 거절하자 TOB를 중심으로 한 경영통합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하며 적대적인 M&A를 선언했다.
하지만 호쿠에츠의 방어는 생각보다 강했다. 우선 호쿠에츠 주식 24.44%를 보유한 미쓰비시(三菱)상사와 호쿠에츠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니가타(新潟) 지방의 주주들이 흔들리지 않았다. 오지의 라이벌인 닛폰(日本)제지가 TOB 저지 목적으로 주식을 대량 매집(8.85%)해 준 것도 큰 도움이 됐다. 한국의 계성제지와 업무제휴를 시도하는 등 합병을 막기위한 호쿠에츠의 노력도 필사적이었다.
오지의 합병 시도는 변화하려는 일본의 기업풍토와 그렇지 못한 것을 동시에 함축하고 있다는 평가다. 강제 합병의 위기에 처한 호쿠에츠를 동정하는 기업 및 주주들의 정서와 적대적 M&A를 최대한 ‘우호적’으로 진행하려다 실패한 오지의 행태 등을 일컫는 말이다. 오지는 호쿠에츠의 경영진을 설득하기 위해 적대적 M&A 선언으로부터 TOB 개시까지 무려 1개월의 시간을 부여하는 우를 범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속전속결로 진행해야 하는 TOB의 속성상 결정적인 실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비록 실패는 했지만 오지의 시도 자체가 일본 기업사에 커다란 의미로 기록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2006년은 일본 기업이 자신들의 경영비전을 상대기업의 주주에 직접 알리는 적대적 M&A를 본격적으로 시도한 원년이라는 것이다.
일본에서 적대적 M&A가 처음 시도된 것은 2000년 무라카미(村上)펀드에 의해서다. 그러나 잉여금을 과잉 보유하거나 낮은 주가를 기록하고 있는 기업을 타깃으로 한 합병 시도였다는 점에서 이번 사례와는 차이가 있는 초보적 단계였다.
도쿄=김철훈 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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