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도둑을 맞으려니까 개도 안 짖는다고, 어떻게 이렇게까지 되도록 몰랐는지 부끄럽다"고 털어놓았다. 대통령도 곤혹스러운 심정에서 한 하소연일 터이니 국정의 총 책임자로서 어떻게 남 일 얘기하듯 할 수 있느냐는 시비는 접자.
● 국정원 보고도 있었다는데
그런데, 개가 정말 안 짖었나? 아니면 짖었는데 안 들렸나? 아니면 짖었는데도 안 들었나? 지난 13일 노 대통령이 일부 언론사 논설위원들과 점심을 하면서 "지금 문제 되는 부분이 성인오락실, 문화상품권인데 청와대가 할 수준은 아니고 부처에서 할 일이지만 그것을 컨트롤하지 못했습니다.
정책적 오류 말고는 부끄러운 일은 없습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전혀 안 들린 건 아닌 것 같다. 유진룡 전 문화관광부 차관 경질 이유를 놓고 논란이 한창인 마당에 나온 이 발언은 많은 이의 주목을 끌었다. 이게 뭘까? 뭐가 있는 걸까? 곧 이어 대통령 조카 관련설이 불거지면서 바다이야기의 광풍이 몰아쳤다.
바다이야기와 관련해 잠시 과거를 돌이켜 보자. 심각성을 지적하는 언론 보도가 간간이 있었고, 2004년에는 국가정보원의 보고가 있었고, 작년에는 검ㆍ경, 국정원이 참여하는 태스크 포스까지 구성됐다고 한다.
그 사이 대통령은 무슨 소리를 듣고 있었을까? 전임 홍보수석은 "대통령은 21세기에 가 계시고 국민들은 독재시대에 빠져 있다"고 했고, 현 이백만 홍보수석은 "박정희 대통령이 고교 교장이면 노 대통령은 대학 총장"이라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이 수석은 또 여당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대통령의 처지를 '계륵'에 비유한 기사에 대해 "어떻게 대통령을 음식에 비유하느냐?"고 흥분하는 바람에 "그럼 대통령이 '샌드위치' 신세라고 하는 것도 안 되나?"하는 비아냥을 들었다.
박남춘 인사수석은 "김병준 내정자야말로 교육부총리에 적임자"라고 우기다가 김씨가 물의를 일으켜 자진사퇴했는데도 인사는 대통령 고유권한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전해철 민정수석은 "노지원씨 관련 의혹은 사실무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 순간 이미 바다이야기는 부산에서 올라온 행정관을 통해 "청와대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하기야 비서들의 장인 이병완 실장은 "민생이 만족스럽지 못해서 그렇지 경제는 잘 하고 있다"며 대통령을 감쌌다. 국회에 출석해 사뭇 당당하게 의원들과 맞서 대서특필된 386 비서관 같은 이의 이야기는 차마 하기에도 민망스럽다.
이런 비서들이 대통령에게 도움이 될까? 그들이 하나같이 야당이 나쁘고, 언론이 못됐고, 여당은 제 살 궁리만 하고, 국민은 너무 몰라준다고 서로 부둥켜안고 하소연하고 골 부리는 사이 대통령의 인기는 10%대로 추락하고, 4ㆍ30, 10ㆍ26, 5ㆍ31 선거에서는 여당이 줄줄이 참패하지 않았는가?
● 인의 장막을 걷어치워라
나는 바로 이런 비서진에 막혀 개 짖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본다. 2000년 전 한나라 때 대학자 유향은 《설원(說苑)》에서 '6정(正)6사(邪)'라고 하여 좋은 신하 여섯과 나쁜 신하 여섯을 논한 바 있다.
왕조시대 얘기라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금 상황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6사 중에서 두 번째 신하는 "임금이 하는 말은 무조건 옳다 하고 임금이 하는 일은 무조건 가(可)하다 하며 (…) 억지로 임금의 뜻에 맞추어 즐겁게 만들어 주되 그 뒤에 닥쳐올 해악은 돌보지 않는다".
반면에 6정의 으뜸은 "어떤 일의 싹이 태동하기 전에, 형태나 조짐이 아직 보이기도 전에 앞으로 닥칠 병폐를 남보다 환하게 미리 알고 막아 임금을 오뚝하게 보전하는 신하"로, 요즘 같은 때 아쉬운 참모다.
남은 1년 반, 야구로 치면 아직 8회 말도 안됐다. 차제에 인의 장막을 한번 확 걷어봄이 어떨까? 눈이 있어도 보이지 않고 귀가 있어도 들리지 않는다면야 할 수 없는 노릇이겠고….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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