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부 장관이 최근 서신을 통해 “한국군의 전시 작전통제권을 2009년에 이양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해 우리 정부는 큰 의미를 두지 않고있다. 전시 작전권의 환수와 관련한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2012년을 적정시점으로 제시한 가운데 재차 2009년 카드를 들고나왔다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우선 정부와 외교 소식통들은 다음달 열리는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사전포석으로 분석하고 있다. 북핵 6자회담 등과 함께 전시 작전권 이양문제도 주요 관심사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전시 작전권 이양시기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분명히 하려는 의도로 관측된다는 것이다.
럼스펠드 장관이 서신에서 주한미군 주둔비용과 관련한 한국의 부담액(방위비 분담금)을 함께 거론한 것을 두고 ‘전시 작전권 이양과 방위비분담 협상을 연계하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한미 양국은 평택에 미군기지가 조성되는 시점에 맞춰 전시 작전권을 이양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으며 평택 기지의 완성은 한미가 합의한 2008년보다 1, 2년 가량 지연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사정을 공유하고 있는 미국이 2009년 카드를 재차 들고 나온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는 분석이다. 국방부 한 관계자도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한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2009년 카드를 제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럼스펠드 장관은 주한미군의 공대지 사격장 문제와 반환기지의 환경오염 문제도 서신에서 거론, 한미 간 군사현안 모두를 전시 작전권 이양과 연계 시킬 의도까지 내비쳤다.
부시 대통령이 14일 열린 ‘전군 야전지휘관회의(Tank Conference)’에서 전시 작전권 이양과 관련해 “한국이 원하는 대로 최대한 지원하라”고 지시한 뒤에 럼스펠드 장관의 서신이 도착됐다는 점도 관심거리다.
“부시 대통령의 지시는 이양시기로 2009년을 고집하지 않을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라며 반색했던 우리 국방부는 럼스펠드 장관의 서신 내용이 알려진 뒤 다소 난감한 표정이다. 국방부 한 당국자는 “이양시기는 미국 입장대로 하되 주한미군 문제나 전시 증원 문제 등 한국이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서 한국 입장에 귀 기울이라는 게 부시 대통령의 지침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2009년 이양이라는 미국의 입장이 변하지 않는 한 10월 열리는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전시 작전권의 이양시점을 두고 치열한 줄다리기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국은 전시 작전권의 단독행사를 위한 준비기간으로 5년 정도는 필요하다며 2012년을 제시해 놓고 있다. 미국은 해외주둔 미군재배치(GPR)계획에 따라 주한미군을 2008년 완성되는 평택기지로 이전하고 이에 맞춰 전시 작전권도 이양하겠다며 2009년을 제시하고 있다.
김정곤 기자 j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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