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삶과 문화] 9월은 가을의 영토이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삶과 문화] 9월은 가을의 영토이다

입력
2006.08.26 00:00
0 0

우문 하나. 가을이 정확히 몇월 몇일부터 시작되는지 아시는 분?

고등학생 때까지 나는 계절을 3개월 단위로 구분했었다. 3,4,5월은 봄, 6,7,8월은 여름 이런 식으로. 3월 1일이 되면 아무리 추워도 두꺼운 겨울옷은 입지 않았고, 6월 1일이 돼서야 반팔소매를 꺼내 입었으며, 9월 1일이 되면 늦더위가 남아있더라도 반드시 긴팔 소매를 챙겨입었다.

●달라진 계절 감각

지혜로운 방법은 아니었으나 우유부단한 성격을 고쳐보려는 노력과 숫자에 집착하는 개인적 취향이 결합된 나름의 생활철학이었다. 게다가 그 시절엔 자연현상이 주관하고 인간의 몸과 정서가 느끼는 계절과 나의 인위적인 구분에 따른 계절에 큰 차이가 없었기에 별 불편은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체감 계절과 나의 ‘369 계절’에 꽤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지구온난화 현상 때문인지, 명백히 봄과 가을이 짧아졌다. 북위 35도 전후의 나라에서 1년의 절반을 반팔 소매를 입고 지낸다.

광개토대왕 땅따먹기하듯 여름이 봄과 가을의 영역을 야금야금 점령해온 것이다. 상대적으로 봄보다는 가을이 더 크게 피해를 입었다. 요즘엔 이것저것 따져봐서 제대로 가을다운 날씨는 10월을 축으로 한 달 남짓 뿐인 듯하다. 이러다가 가을이라는 계절이 영영 사라져버리는 날이 오는 건 또 아닐까.

나는 가을을 좋아한다. 그냥 좋아하는 게 아니라 편애 수준이다. 딱히 이유는 없다. 사랑하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한가. 청명하게 높은 하늘, 선선한 바람, 색색들이 물든 풍경 등 개성없는 이유를 늘어놓아서 내 사랑이 폄하되는 것도 싫다.

한때 야구에 열광했던 시절엔 야구로 인해 가을을 더 예찬하기도 했다. 야구는 가을의 스포츠다. 기나긴 정규시즌이 끝나고, 추수하듯 ‘가을 잔치’ 포스트시즌이 열린다. 그런데,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전세계적으로 야구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 야구는 20세기의 스포츠였다는 얘기도 들리곤 한다. 갈수록 짧아지는 가을과 21세기 들어 시들해진 야구가 운명의 궤를 같이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 안타깝기도 하다.

●짧아서 더 아름다운 가을

가을의 안에 있으면 시간이 지나가는 게 눈으로 보인다. 재미있는 영화를 볼 때 언제 시간 갔는지 모르는 느낌,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을때 시간이 억울할 정도로 빨리 지나가는 기분…. 체감하는 시간 경과의 속도는 애정의 정도에 비례한다. 가을은 짧아서 아름답다. 아름다워서 짧다.

닷새 후면 9월이다. 기상청 예보는 올 9월은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평년보다 높은 기온을 보일 거라 한다. 한때 가을의 영토였다가 지금은 여름의 식민지가 돼버린 9월이지만 그래도 그 뿌리는 가을이다. 간만에 옛날로 돌아가서 9월 1일이 되는 순간 긴팔소매를 입어볼까 한다. 늦더위가 괴롭히든 말든. 그리고, 가을의 오랜 친구인 야구장에도 한번 들러보리라.

누가 뭐라든, 9월은 가을이다.

김현석ㆍ영화감독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