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조계종이 경기 가평군 현등사에서 도난당한 사리구(舍利具)를 되찾기 위해 종단 차원에서 강력 대응하기로 해 주목된다. 이 사리구는 현등사 삼층 석탑 안에 있던 것으로, 현재 삼성문화재단이 갖고 있다. 조계종은 23일 ‘현등사 사리 제자리 되찾기 추진위원회’발족 기자회견을 갖고 항의 현수막 부착, 천만 불자 서명 운동 등 사리구 환수를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종단 차원의 이러한 움직임은 현등사가 최근 삼성문화재단을 상대로 낸 반환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받은 데 자극받아 나온 것이다. 당시 서울서부지법 재판부의 판결 요지는 “지금의 현등사가 사리구를 갖고 있던 옛 현등사와 같은 절이라고 볼 수 없어 소유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고려 후기에 건립된 옛 현등사는 조선시대 임진ㆍ병자 양란과 숭유억불정책, 일제 강점기 불교교단 통폐합 등으로 인적ㆍ물적 요소가 수없이 바뀌었으므로 지금의 현등사가 그 현등사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조계종은 재판결과에 크게 반발하며 즉각 항소했다. 추진위는 옛 현등사가 겪은 변혁은 다른 절도 마찬가지인데, 재판부 논리대로라면 절간의 문화재는 주인없는 물건이 되어 도난품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는 절이 거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추진위는 “절 터만 남은 곳을 포함해 전국 어디에서도 ‘현등사’ 라는 절은 가평 현등사 밖에 없다”며 “그런데도 재판부가 옛 현등사와 오늘의 현등사의 동일성을 문제 삼은 것은 도난품 회수라는 소송의 핵심을 피하려고 내세운 억지 논리이자 조계종의 법통을 부인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문제의 사리구는 1470년 현등사 삼층 석탑 안에 봉안된 것인데, 지난해 연말 교도소에 복역 중인 서모 씨가 1980년께 이 사리구를 탑에서 몰래 꺼내어 중간 판매상에게 넘겼다고 고백하는 편지를 조계종에 보내오면서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됐다. 삼성문화재단은 정당하게 취득했다고 주장하지만, 현등사와 조계종은 사리구에 ‘운악산 현등사’ 라고 명백하게 새겨져 있어 장물인 줄 몰랐다는 삼성측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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