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외 정책이 종교에 큰 영향을 받고있다는 흥미로운 보고서가 나왔다.
헨리 키신저 연구소의 수석 연구원인 월터 러셀 미드 박사는 미국 외교전문지인 ‘포린 어페어스’ 최신호(9~10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에서 세력을 넓혀가고 있는 청교도 복음주의자들이 미국의 외교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부시 행정부가 노골적인 친이스라엘 정책을 펴면서도 다른 지역에서 인권문제를 유난히 강조하는 것은 그의 종교적 지지 세력인 복음주의자들의 입김 때문이라는 것이다.
복음주의자들은 청교도의 한 정파로 성서지상주의를 외치는 근본주의자들과 현실을 중시하는 자유주의들과 구분된다. 이들은 근본주의자들처럼 구원을 강조하면서도 인권이나 기아 같은 개별사안에 대해서는 자유주의자들 만큼이나 적극적인 개입을 주장해온 중도파다.
미드 박사는 최근 미국에서 복음주의자들이 늘어나고 이들이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을 지지하면서 이들의 종교이념이 미국의 대외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2004년 대선에서 복음주의자를 자처하는 미국인의 40%(백인 복음주의자들은 78%)가 부시를 지지했다. 상ㆍ하원의원들의 25%는 스스로 복음주자로 밝힐 정도로 막강한 정치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복음주의자들의 종교이념은 이스라엘이 구원의 땅이라는 것을 믿고, 전통적으로 인도주의적 지원과 인권 문제를 우선시한다. 이 같은 종교이념은 미국의 최근 외교정책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최근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분쟁에서 레바논 민간인 희생자가 늘면서 국제여론이 등을 돌리는 상황에서도 이스라엘을 노골적으로 편들었고, 동시에 인도적 지원이라는 명목하에 아프리카의 에이즈확산 방지에 150억 달러를 지원했다.
이란 핵 문제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복음주자 지도자들은 최근 모임을 갖고 “이란이 이스라엘을 공격한다면 미국은 악마들을 막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핵무기 개발을 선언한 이란에 대한 강경책을 주문한 것이다. 이 성명은 미국의 대 이란 정책에 그대로 투영됐다.
국내정치에는 미국 중간선거의 이슈로 떠오른 낙태 찬반논쟁에 대해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가톨릭과 연합해 정치적 힘을 발휘하고 있다.
미드 박사는 “복음주의자들이 세력을 넓혀가고 있지만 점점 보수색채를 띠면서 자유주의자들이나 전문가들의 강한 저항에 부닥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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