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의 남성복은 S라인, 여성복은 Y라인이다. 남성은 실루엣을 살려 몸매를 드러내고 로맨틱한 장식을 더한다. 여성복은 어깨를 강조하는 바지정장 차림의 강인한 여성을 시즌 테마로 잡았다.
현대에 이르기까지 옷에는 반드시 남녀구분이 있었다. 이는 각자가 담당한 성역할을 의미했다. 즉 남성인가, 여성인가에 따라서 행해야 하는 사회적이며 문화적인 기대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 가을, 남성은 여성복의 특성을, 여성은 남성복의 특성을 탐내며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고 있다. 패션이 보여주는 남녀의 역할 바꾸기는 서로의 장점을 흡수하고 경계를 허무는 방법이다.
이번 가을 남성복의 큰 특징은 ‘슬림 & 로맨틱’. 남성복의 외관을 더 날씬하게 표현하고 은근한 멋 부리기에 집중한다. 정장 재킷의 경우 가슴둘레와 허리둘레의 차이가 4~5드롭(8~10cm)이 일반적이었으나 올 가을에는 7~8드롭으로(14~16cm) 차이가 나도록 제작돼 날씬한 허리가 강조되고 있다.
‘마에스트로’를 비롯한 국내 브랜드에서도 기존 제품에 비해 허리 라인을 더 슬림하게 처리한 8드롭(drop) 제품이 증가했다. 실제로 마에스트로는 전체가 8드롭 제품으로 구성된 ‘마스터피스 제로’ 시리즈의 물량을 전체의 10% 정도 비중으로 늘렸다고 한다.
수트의 슬림화 추세에 따라 셔츠의 실루엣도 함께 슬림해지고 있다. ‘갤럭시’ 셔츠의 경우 가슴둘레와 어깨 둘레를 줄이는 등 가슴에서 허리, 엉덩이로 이어지는 곡선을 강조하는 슬림 패턴, 에스-핏(S-fit)을 적용해 입체감을 살렸다.
여성복처럼 날씬해진 S라인의 남성복은 반짝이는 장식물 달기에도 열을 올렸다. 칼라 부분에 반짝이는 크리스털 버튼이 달린 셔츠, 큐빅 장식을 단 타이가 줄줄이 내걸렸다. 이러한 경향은 지난 몇 년간 여성복을 지배했던 ‘로맨티시즘’의 영향이 남성복까지 확산된 결과. 이 같은 장식아이템은 지난해 가을에 비해 3배가량 물량이 늘어났다.
남성복의 장식적인 요소는 이전의 메트로섹슈얼들의 필수 의복이었던 꽃무늬 셔츠처럼 화려하게 드러나지 않고 은근하게 보여 진다. 이러한 경향은 상의를 중심으로 포인트만 준 제품들이 많다. 칼라에 본판의 줄무늬 색과 같은 색실로 스티치를 넣어 클래식한 느낌을 주는 셔츠, 크리스털 단추를 칼라 양끝에 단 셔츠는 ‘무대의상’으로 보기에는 고급스럽다.
남성들이 우아한 멋에 눈뜨고 있는 동안 가을을 맞는 여성들은 강인함을 학습하고 있다. 80년대 풍이라는 큰 흐름 아래에 파워풀한 여성의 이미지를 앞세웠고 나폴레옹 시절의 고전적인 군복 형태나 글램 록 스타일의 장식으로 남성복의 영향을 받은 스타일도 주목받는다.
그중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수트가 도시 여성의 현대미를 살려줄 ‘매니쉬(Manish) 패션’을 주도한다. 부드럽고 페미닌한 면을 억제하고 남성적인 면에서 영감을 받은 이번 시즌 매니쉬룩은 남성의 클래식 수트를 그대로 가져온 듯한 ‘머스큘린(근육질의ㆍ남성다운) 수트’와 타이처럼 보이는 스카프타이, 남자 바지처럼 허리 부분에 턱을 잡은 와이드 팬츠가 대표적이다.
가장 주목받는 아이템은 셔츠에 테일러드 재킷과 슬림한 팬츠로 이루어진 줄무늬 바지정장을 갖춰 입는 것으로, 남성 정장소재를 응용한 ‘베스띠벨리’의 은회색 바지정장처럼 외관은 날씬하게 여성적인 몸매를 드러내면서도 어깨를 강조해 남성적인 강인함과 여성적인 도도함을 동시에 풍기고 있다.
유럽의 중세 시대에서 영감을 얻은 귀족적인 밀리터리 감성은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구성된다. ‘닥스’ 여성복은 어깨견장, 금속 버튼이 달린 검은색 장교 재킷에 체크무늬 타이와 중절모를 함께 코디했다. 나폴레옹의 군복차림처럼 고전적인 장교의 복장을 다시 보는 듯한 ‘레트로 밀리터리 스타일’이 럭셔리하고 정교한 테일러링으로 재해석된 디자인이다.
나폴레옹 시대 뿐 아니라 80년대 스타일이 전체적인 스타일을 지배하면서 여성의 파워풀한 모습이 새롭게 표현되었다. 어깨가 강조된 Y자 실루엣이 대표적. 상의는 과장되게 부풀리고 하의는 스키니팬츠나 타이즈로 가늘게 보이도록 하고 있다. 볼륨 있는 스타일의 인기도 지속되는데 허리를 잘록하게 만들기보다 전체적인 형태감이 흐르는 듯 유연한 느낌으로 표현된다.
남성복의 여성화, 여성복의 남성화가 유행이라고 당장 정장 한 벌을 빼입으러 달려 나갈 필요는 없다. 남성정장처럼 보이는 줄무늬 바지정장에 흰색 셔츠 대신 지난 봄여름 애용했던 레이스, 러플 시폰 블라우스를 맞춰 입으면 남성적인 매력과 여성적인 매력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 언제나 그랬듯, 스타일링의 화두는 입는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맞춰 입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니까.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suzanpark@dreamwiz.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