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한 눈, 충혈된 눈에 XX제약의 OOO’ 하는 광고 문구는 하루 종일 컴퓨터와 서류 작업으로 지친 현대인들에게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는 속담처럼 맑고 깨끗한 눈을 갖고 싶은 것은 우리 모두의 희망사항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로 환자들을 만나보면 이렇듯 소중한 눈에 비해 의외로 안약에 대한 상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안과를 찾는 환자들은 대부분 안약을 사용한 경험이 있지만 무슨 약이었는지 물어보면 자신이 사용했던 안약의 성분은 고사하고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의사의 입장에서는 그 환자가 사용했던 안약이 무엇이었는지를 밝히는 것을 포기할 순 없다. 다행히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안약 뚜껑의 색깔, 넣는 횟수, 안약의 혼탁정도 등을 물어보면 어느 정도 알아 낼 수 있다. 뚜껑이 빨간 색인 안약은 동공을 키우는 작용을 하는 것들이고, 초록색은 반대로 동공을 줄여주는 작용을 하여 녹내장 환자에게 사용하는 약이며, 흰색인 경우에는 대부분 항생제이거나 인공눈물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화려한 색상의 안약병이 등장해 의사들도 구별이 어려운 경우가 있다.
안약을 처방하고 다음 외래시간에 온 환자에게 물어보면 약이 모자랐다고 하는 환자가 많다. 심지어는 왜 안약을 넉넉하게 처방해주지 않았냐며 오히려 처방한 의사를 핀잔하는 환자도 있다.
안약의 용기는 겉보기에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세심한 배려와 과학이 숨겨져 있다. 안약 용기가 크든 작든 간에 한 방울의 양은 일정하게 똑같아야 하며 몸통을 누르는 정도와 상관없이 일정한 양, 약 50㎕가 떨어지게 해야 하는 제조의 노하우가 있다. 눈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그보다 많은 양은 눈 밖으로 흘러내리기만 하므로 정확히 한 방울만 넣어도 안약으로서의 효능은 충분하다. 한 방울만 달랑 점안하면 부족한 것 같아 줄줄 흘러내리도록 두 눈에 듬뿍 넣는 환자들이 있다. 의사가 처방을 할 때는 한 방울씩 넣을 때를 기준으로 하니 이런 환자에게 처방된 안약은 항상 부족할 수밖에 없다.
안약은 뚜껑을 따면 대부분의 경우 1개월 내에 사용해야 한다. 안약의 뚜껑을 열면 공기로부터 오염이 되거나 눈꺼풀 등에 닿게 되면서 안약에 세균들이 번식할 수 있다. 이러한 세균의 번식을 막기 위해 안약에는 보존제가 들어 있어 약 1개월 정도 보관하며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수시로 넣어야 하거나, 안전하다고 돼 있는 보존제의 독성마저도 우려되는 경우를 위해 하나씩 뚜껑을 따서 하루 동안에 사용하고 버릴 수 있는 일회용 안약들이 판매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용기 밖의 공기가 들어오는 것은 차단하고 안약만 밖으로 나오게 하는 용기도 개발되고 있으나, 안약 값보다 안약 병 값이 더 비싸게 돼 생산이 계속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지금 서랍을 뒤져보고 언제 뚜껑을 열었는지 알 수 없는 안약병을 발견한다면 더 이상 미련을 갖지 말고 버리기를 권한다. 그 병 안에서 우글거리는 세균을 소중한 눈에 넣어 다른 감염을 일으키는 것보다 안약을 새로 처방받는 게 훨씬 경제적일 것이다.
이화여자대학교 목동병원 안과 이정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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