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있고 배운 사람들이 도박산업에까지 손을 뻗치다니….."
성인용 오락실 경품인 상품권 발행업체의 대표이사와 주요 대주주에 태광과 보광 동원 삼미 등 재벌기업은 물론 다음 인터파크를 비롯한 유명 인터넷 업체 대표 등이 대거 포함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사회적 책임을 함께 짊어져야 할 대기업이 이윤의 사회 환원과 새로운 시장 개척 등 '기업가 정신'은 외면한 채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손쉽게 돈을 버는 일에 앞장서 왔다는 데 대해 강력히 비판했다.
23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4조5,460억원의 도서문화상품권을 발행한 1위 업체 한국도서보급은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 부자가 대주주로 돼 있고, 2위인 한국문화진흥은 홍석규 보광그룹 회장과 형제 자매가 대주주다. 이들 회사는 올해에만 50억~100억 정도의 순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홍성태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은 "정부와 대ㆍ중견기업, 유명 정보기술(IT) 기업인 등이 문화상품권의 탈을 쓴 '도박상품권' 발행의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임이 드러났다"며 "이들은 제3자의 로비를 받아 도박산업 확산에 영향력을 행사해 온 게 아니라 스스로의 이권을 위해 대한민국의 '도박공화국'화를 앞장서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도박산업 규제 및 개선을 위한 전국네트워크' 이우갑 공동대표는 "돈벌이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기업인들 욕심 때문에 서민들이 수십 조원을 도박장에 쏟아 붓고 있다"며 "상품권 정책에서 드러난 행정기관의 엇박자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기구 설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명문대를 졸업하거나 해외에서 석ㆍ박사 학위를 받은 식자층과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상품권 발행을 주도한 사실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들은 게임 컴퓨터 디자인 등 상품권 발행과 관련된 공부를 했거나 IT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박완기 경실련 정책실장은 "한 해 천문학적인 돈이 도박장에서 사라지고 있는 현실은 단순히 정책실패의 결과가 아니다"며 "정책 입안자를 포함한 사회지도층의 암묵적 '방조'가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고 날을 세웠다. 박 실장은 "상품권 업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돈벌이가 되는 곳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한국사회 지도층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일반 시민들도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는 반응이다. 주부 유인선(41)씨는 "겉으로는 고상한 척 해온 기업인들이 도박상품권을 만들었다니 기가 막힌다"며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중학교 교사 강성주(37)씨도 "학생들이 '상품권 찍어내서 돈도 벌 수 있나요' '○○업체가 상품권도 만들었나요'라고 질문할 때면 난감하다"고 하소연했다. 네티즌들도 "상품권으로 있는 사람들만 더 배를 불렸다", "상품권 범람으로 1년 새 적자에서 흑자로 반전된다면 누가 안 뛰어들겠냐"며 발행업체와 정부를 싸잡아 비난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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