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이나 의혹이란 것은 이제는 우리의 일상에서 간단한 스낵처럼 언제건 아쉽지 않을 정도로 제공되는 기호품 정도의 자극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이 문학이든 영화든 연극이든 상업매체의 기사나 다큐필름이든 또 오락성 게임이든, 비밀을 골자로 한 내러티브를 갖는 이상 이를 내놓는 측에선 그 문화적 상품가치에 대해 비교적 안심하고 있다는 뜻일 거다.
● '비밀'의 문화적 상품가치
어디서 어떤 소재를 캐내는 것이 문제일 뿐이지 비밀 이야기는 수시로 생산되고, 또 수시로 소비될 태세로 우리 가까이에 넘치도록 널려진다. 누군가의 아무리 사적인 이야기, 또는 가상의 것이라 할지라도 비밀의 인자가 우선 그 서사를 힘있게 굴러가게 하는 공인된 엔진으로 탑재되기 때문이다.
이 엔진이 갖는 흡인력은 특히 여러모로 짧고 산만해진 현대인의 주의력을 지속적으로 붙들어매는 기특한 힘을 발휘하곤 한다. 어쩌면 비밀로 봉인된 이야기들은 흔히 우리가 알고 있듯 지적인 흥미나 탐구, 상상력, 또는 자신의 추리능력을 가늠해보고픈 의식 따위 말고도 우리를 자극하는 또 다른 심리적 면모를 지니고 있을지 모른다.
대상 속에 스며들어 있을 어떤 배타 내지는 배제, 격리, 분리, 독점, 금단 등의 냄새나 공기 말이다. 비밀은 그것을 학습하거나 공유한 사람들 사이의 유대감과 배타의식을 굳히는 일종의 경화제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이 서클을 향한 잠재적인, 또는 가상의 편입을 꿈꾸어보며 사람들은 비밀의 배타성을 그 주성분으로 한 문화상품들을 도취적으로 소비하게 되는 것 아닐까.
사실 비밀의 가장 뚜렷한 속성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이의 누설이나 전달, 폭로를 향한 갈망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대상이나 현상의 비밀이 하나 둘 벗겨지는 과정이란 대개 경험과 학습을 통해 깊이 매설된 이'누설의 맥락'들을 탐지해나가는 하나의 감각적 행로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현대 건축의 비교적 실험적인 작업들 또한 일반인에겐 언뜻 보면 '낯설음'의 코드들로 그득한, 난해하고 배타적인 공간으로만 인식되기 일쑤다. 그런 류의 공간에는 그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만이 즉각 읽어낼 만한 수많은 코드와 상징, 정보들이 재어지기 마련인 때문일 거다.
이처럼 추상성 깊은 건축은 수치정보, 물질정보, 형상정보, 기술정보, 인체공학, 유형학, 비례, 역사성, 시간성, 지역성, 경제성, 법적 한계, 현상, 기억, 인식, 기후, 위생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범주의 사건과 인자들이 비범하게 얽혀들어 있는 공간적 대서사가 되고 만다.
● 낯설음의 코드로 그득한 공간
자의식이나 실험정신이 치열한 작가들의 공간일수록 그 내밀함이나, 난해함, 배타성, 파격의 냄새는 짙다. 달리 보면 이런 작가들의 공간을 오랜 시간을 통해 경험하는 일이란 그들이 매설해놓은 다채로운 비밀의 코드들을 매일 하나둘씩 해독해나가는 모험의 여정이랄 수 있다.
언젠가는 그들 의식의 밑바닥층 골방 어딘가에 뒹구는, 먼지로 뒤덮인 어떤 밀의(密意)의 약도나 금서(禁書) 따위를 줍게 될 지도 모르는, 그런 모험 말이다.
김헌 건축가ㆍ어싸일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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