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기 100년을 꽉 채우며 살아온 우리 이웃 어른들의 삶의 이야기를 채록한 책 ‘한국민중구술열전’ 15권이 한꺼번에 나왔다. 20세기민중생활사연구단(단장 박현수ㆍ영남대 교수)이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이룬 성과다. 연구진 100여 명은 2002년 기획을 시작, 1년여(2004.8~2005.9)간 대상자 선정 및 인터뷰ㆍ채록 작업을 벌여, 중복된 내용들을 추리고 재편집해 책으로 묶었다.
책의 구술자들은 강가에서 우연히 주워든 조약돌처럼, 그렇게 세월에 닦이고 닳아온 평범한 이들이다. 청상으로 과일장수 방직공장 직공 일을 하며 아들을 키워낸 이두이(81ㆍ여)씨, 한강 배 낚시꾼으로 한 생을 산 임창봉(71)씨, 9대째 어촌에 살면서 농민으로서의 자부심을 지니고 있는 김종상(67)씨, 농촌에서 나서 농사를 지으면서 생활유물전시관을 차린 박현순(61)씨…. 전북 김제에서 5남2녀를 낳고 농사지으며 산 최채우(77) 할머니의 이력은 이렇게 이어진다.
“39년(10세) 야학에서 일본어와 한국어 배움- 43년(14세) 장티푸스로 머리가 모두 빠짐- 46년(16세) 어머니 권유로 화장을 시작함-(…) 72년(43세) 풍년으로 마을에서 두 번째로 TV를 샀음- 78년(49세) 목도열병으로 농사를 망침- 81년(52세) 남편 환갑잔치- 86년(57세) 국회의원 선거 돕던 둘째 아들 덕에 청와대 구경…”
연구단이 착안한 것은 급격히 자취를 감춰가고 있는 우리 근대 100년의 흔적을, 물건이나 건물(유물ㆍ유적)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로 보존하자는 것이었다고 한다. 지난 시간과 공간과 사건을 삶의 이야기를 통해 복원함으로써, 우리 인문학의 새로운 수원(水源)이 되게 하자는 것이다. 각각의 책의 낱낱의 갈피에는, 구술자들의 개인사(건강, 살림살이 등) 뿐 아니라, 당대의 사회사(풍속, 행정, 역사 등)가 고스란히 내장돼있다.
연구단은 지난 해 8월 ‘20세기 한국민중의 구술자서전’이라는 이름으로 생업 분류에 따른 책 6권을 내기도 했다. 기획위원인 함한희(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 교수는 “매 2년마다 15~20권의 책을 출간한다는 목표 하에 힘 닿는 데까지 이 작업을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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