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아선 누구든 노무현 대통령 처지라면 억울한 심정을 가누기 힘들 듯 싶다. 오죽했으면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는지 꼽아 보라"고 했을까. 그토록 지적을 당하고도 잘못을 인식하지 못하는 자기성찰 결여가 놀랍기도 하지만, 어쨌든 당사자로서는 그렇게 느낄 수 있는 문제들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같은 것이다.
● 본질에서 비껴난 작통권 논란
알다시피 작통권 환수는 노 대통령이 뜬금없이 제기한 것이 아니다. 일찍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대선공약으로 1990년대 초반부터 한미 간 논의가 시작됐고, 김영삼 정부 때 우선 평시작전권을 돌려 받으면서 2000년 전후해 전시작전권까지 환수키로 했던 것이다. 당시 평가는 '자주국방의 일대 전기를 마련한 쾌거'였다. 지금 작통권 환수를 망국과 등치시키는 이들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현 정권만 보더라도 인수위 때부터 이를 정책목표로 내걸었고, 이후 군 행사 등에서 여러 차례 거론했으며, 지난해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도 의제로 다뤄졌다.
이 때만 해도 원론수준의 우려를 제기하는 정도에 그쳤던 사안이 돌연 국가를 뒤흔드는 사안으로 비화한 것은 이 달 초 전 국방장관들의 회동과 이에 대한 윤광웅 장관의 과한 대응 때문이었다. 사안의 오랜 진행상황으로 볼 때 갑자기 촉발된 현재의 극한적 격돌구도가 도리어 뜬금없는 것이다.
작통권 환수 찬반논쟁은 충분히 이뤄진 만큼 예서 또 논할 것은 아니다. 다만 미국은 그들의 세계 전략적 계산에 따라 움직이고, 작통권도 그 차원에서 어차피 다뤄질 수 밖에 없던 문제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는 있다
. 그렇다면 대북관계에서 독자적 유연성을 가질 수 있고, 국민의 정서적 요구에도 일정 부합한다면 어느 정도 주도적 입장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정말 머리를 싸매고 고심할 대목은 새 국면에서의 안보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한미 간의 군사적 협력네트워크를 가능한 한 촘촘하게 짜는 일이다.
이러고 보면 정부로서는 "그런데 왜 우리가 하면 이 난리들이냐"고 항변할 만 하다. 그런데 문제의 핵심은 바로 '왜 우리가 하면'에 있다. 과거와 안보상황이 바뀌었다는 작통권 환수 반대자들의 말은 설득력이 없다. 당시 남북은 훨씬 적대적이었으며 우리의 경제력과 군사력도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었다.
현 시각에서 보아도 작통권을 갖겠다고 큰소리칠 형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지금 와 오히려 반대하는 이유는 "현 정권이 추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솔직한 대답이다. 언뜻 비합리적으로 비치지만 현 정권의 무조건 감싸안기식 대북정책이 늘 못마땅하고, 미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를 조마조마하게 지켜봐 온 이들로서는 자연스런 반응이다.
심지어 여전히 많은 이들이 현 정권의 이념적 정체성에 대한 의심을 풀지 않고 있다. 386출신의 여당의원조차 좌파수구세력으로의 전락을 걱정할 정도니까 지나친 것도 아니다. 이런 판국에 앞으로 국가안위에 직접적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사안을 맡긴다는 것이 불안하고 미덥지 않은 것이다.
● 현 작통권 논란은 정서의 문제
그러므로 작통권 문제는 논리가 아니라, 애당초 합의 불가능한 정서의 문제로 치환돼 있다. 현 정권이 적어도 절반 가까운 국민들로부터 이념성향이나 안보의지, 나아가 전반적인 국정수행능력을 의심 받고 있다면 이는 작통권 같은 민감한 문제를 다룰 자격이 충분치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작통권 환수를 불가피한 시대적 흐름으로 보아 찬성하는 미 정부 관계자나 전문가들도 이념적, 감정적 대립 형태로 나타나는 지금의 논의상황이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개연성만큼은 한결같이 우려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작통권 환수 문제는 현 정권에선 일단 유보하는 것이 낫다. 억울하겠지만 이 상황 또한 집권 당시부터 다수 존재하던 반대입장을 끝내 끌어안지 않은 것, 국가운영에서 신뢰를 얻지 못한 탓이다. 앞서 노 대통령이 궁금해 한 잘못 중에 가장 큰 게 그것이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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