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의 통수권자는 맥아더 원수냐? 아니면 이 나라의 대통령이냐? 유엔은 우리가 38도선을 넘어가서 국토통일을 이룩할 권리를 막을 수 없다."(이승만 대통령)
"국군의 작전지휘권은 이미 대통령 각하께서 서명하신 문서에 따라 유엔군사령관에게 이양되었으므로 지금 이중으로 명령을 내리시게 되면 혼란을 가져올 것입니다."(정일권 국군총사령관)
한국전쟁 때 서울 수복 다음날인 1950년9월29일 유엔군사령부가 모든 작전부대에 일단 38도선에서 진격을 멈추라는 명령을 내리자, 이승만이 군 수뇌부를 불러 대책을 숙의하는 장면이다. 육군사관학교 전사학과가 펴낸 '한국전쟁사'에서 그대로 인용했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50년 7월14일 이승만은 유엔군사령관 맥아더에게 국군의 작전지휘권을 이양한다는 서한을 보냈다. 이미 7월7일 유엔 안보리가 미국 주도의 통합군 사령부 설치를 결의한데다 작전능력이 없는 한국에 다른 방도는 없었다.
작전지휘권은 정전협정 체결 후인 1954년 한미 방위상호방위조약 발효 전에 작전통제권으로 바뀌어 계속 유엔군사령관이 행사하게 됐다.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가 창설되면서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은 유엔사령부에서 한미연합사로 이관됐다.
한국이 작전지휘권 또는 작전통제권을 유엔군사령부 또는 한미연합사령부에 이양한 것은 미국의 완전한 개입에 의해 안보를 유지할 수 밖에 없는 현실 그 자체였다.
이승만과 정일권의 대화에 드러나듯 한국군의 독자 북진을 제어하기 위해 정전협정 후에도 미국이 작전권을 돌려주지 않았다고 해석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이런 해석은 그 후로도 미국이 1ㆍ21사태, 버마 랭군 폭탄 테러, 대한항공기 폭파로 이어지는 북한의 도발에 대한 한국의 무력보복을 막는데 작전통제권이 유효했다고 본다.
작전통제권은 1979년 12ㆍ12 사태 때도 문제가 됐다. "작전통제권을 갖고 있는 위컴 사령관은 전두환과 육사 동기이자 친구인 노태우 사단장이 승인도 받지 않은 채 최전방 DMZ 부근 사단병력을 이끌고 쿠데타에 가담하기 위해 서울로 진격한 데 경악했다."(돈 오버도퍼 '두개의 코리아')
평시 작전통제권은 1994년 김영삼 정부에서 한국 합참의장에게 이양(환수)됐고, 이제 남은 전시 작전통제권이 논란이다. 미국이 전시 작전통제권을 한국에 돌려준다니 한국이 먼저 북한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점만은 이제 확실해진 것 같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미국에 이양했던 전시 작전통제권이 시대 변화로 다시 한국에 이양되는 것을 "주권을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말한다면 정치적 과장이다. 전시 작전통제권을 한국이 단독 행사하는 것이 "자주국방의 꽃"이 아님도 물론이다.
단독 행사의 뒤에는 미군 재편에서 한국이 수용하고 싶지 않았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즉 주한미군의 기동군화를 통한 역외 투입 확대 가능성이 열려 있다. 평시에는 한국의 군비 부담, 전시에는 희생의 증가를 의미하기 때문에 차라리 자주국방의 '십자가'에 가깝다.
주권회복을 위해 전시 작전통제권을 되찾아오노라는 식으로 선전을 하려다가 반대가 거세자 역대 정부가 다 추진했다고 꼬리를 빼는 정권 담당자들의 행태는 우습다.
작전통제권을 무시한 쿠데타 정권에서 한자리를 했던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작전통제권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더욱 짜증나는 노릇이다. 주권이든, 작전통제권이든 그 무거운 역사와 의미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제 좀 저음(低音)으로 말하기 바란다.
신윤석 국제부장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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