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형 비리사건을 통칭하는 '게이트'가 1972년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비롯한 것임은 널리 알려진 얘기다. 그 해 6월17일 새벽 워싱턴의 워터게이트빌딩에 입주해 있던 '민주당전국위원회(DNC)' 본부에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위한 비밀공작팀이 침입해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던 사건이다.
닉슨은 보좌관, 고문, 장관 등 측근 선에서 사건을 봉합하려 했으나 결국 연루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쫓겨났다. 미 정치사상 최대 스캔들이 된 이 사건은 전후 기성가치의 총체적인 붕괴를 초래, 사회문화적으로도 시대를 가르는 분기점이 됐다.
▦최근의 사례로는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기밀정보를 조작, 누설한 리크게이트가 대표적이다. 얼마 전 영국 블레어 총리의 정치자금 대출스캔들이나 프랑스 쥐페 전 총리의 정당재정 불법조달사건에도 게이트가 붙었다. 물론 게이트가 희화적으로 쓰이기도 한다.
미 프로풋볼(NFL) 경기장에서의 가수 재닛 잭슨 가슴노출해프닝이 '니플(젖꼭지)게이트'로, 클린턴 대통령의 성 스캔들이 '지퍼게이트'로 불리는 경우다. CBS앵커 댄 래더가 부시의 병역특혜문건을 오보한 일에는 '메모게이트'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국 관련으론 일찍이 76년 박동선씨의 미 정치인 금품매수사건 '코리아게이트'가 있으나 무대가 미국이어서 그닥 피부에 와 닿지는 않았다. 진짜 '한국적 게이트'는 김대중정부 후반에 폭발적으로 발생했다.
2000년 가을부터 이듬해에 걸쳐 잇따라 터진 정현준, 진승현, 이용호게이트 등 이른바 '3대 게이트'에다 정권 막바지 윤태식, 최규선게이트 따위가 그것이다. 대개 중소사업인과 정보기관, 여권인사들이 뒤엉켜 빚은 부패스캔들이었다. 재벌기업이 선거자금을 차떼기로 넘긴 '트럭게이트'는 야당이 관련된 이례적 케이스였다.
▦유독 우리에게 게이트가 잦은 것은 여전히 불투명한 사회구조 때문일 것이다. 거기다 일단 정·관계 연루의혹을 제기해 사건을 키우고 보는 관행도 한몫 했다. 실제 석탄게이트, 월드컵게이트, 윤상림게이트 등 애초부터 깜냥이 안된 사건들도 허다했다.
이번엔 또 '바다이야기'가 슬슬 모양새를 갖춰가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부당한 '힘'이 개입한 냄새가 풍긴다. 기왕에 게이트로 이름 붙일 양이면 그에 걸맞은, 제대로 된 그림이 나오길 기대한다. 지금껏 게이트(대문) 수사결과란 게 고작 홀(구멍) 크기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므로.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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