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포항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시민궐기대회에 참석한 포항 시민들은 지쳐 있었다. 장대비 속에서 운동장 밖 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은 “50일째 포항 건설노조 파업이 이어지면서 지역 경제는 파탄 직전”이라며 파업 중단을 촉구했다.
다음날 민주노총이 주관한 전국노동자대회는 불상사 없이 끝났다. 열흘 전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로 300여명의 부상자를 냈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시민들의 호소가 통하기라도 한 것일까?
하지만 “경찰 진압봉 앞에 우리의 머리통은 저당 잡혔다” “자본의 심장 포스코를 박살내자” 등 살기등등한 구호는 사태 해결을 바라는 시민의 기대를 외면하고 있었다. 노조원들은 지도부의 자제 요청으로 꾹 참고 있지만 언제든지 한 판 붙겠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한 참가자는 “관제 시위는 진정한 민심이 아니다”고 쏘아붙였다.
한때 노사가 단체협약안에 잠정 합의하면서 해결 기미를 보이던 포항 사태는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이 파업의 주체로 등장하면서 오히려 전국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시민들 역시 노조가 아닌 민노총을 향해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한 시민은 “무슨 이유로 그네들(민노총)이 감놔라 배놔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물론 노조원들의 열악한 근로 환경과 불법 하도급 문제를 외면하고 책임을 노조측에만 떠넘기는 사용자측의 태도가 사태 확산에 한몫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양측의 이런 감정 싸움에 피멍이 드는 쪽은 애꿎은 시민들이다.
폭력 시위를 비판하는 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이날 집회에는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총출동했다. 권영길 의원단 대표는 “합리적 노사 관계를 바라는 시민의 마음이 노동자의 마음”이라고 역설했다. 그의 말이 진심이라면 “이러다간 모두 다 죽는다”는 시민들의 외침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김이삭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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