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 날짜가 9월14일로 잡혔다. 남은 임기로 볼 때 노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해 갖는 정상회담으로는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
●노대통령 방미 보는 워싱턴의 우려
거두절미하면 노 대통령의 방미를 바라보는 워싱턴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은 것 같다. 최근 쏟아져 나온 미국을 향한 노 대통령의 국내 발언이 이런 분위기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미 행정부 내 일각에서는 “이 같은 상호 불신 상태에서 어떻게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라며 정상회담 무용론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새어나오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말까지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국장을 지낸 마이클 그린 조지타운대 교수는 정상회담 전망을 묻는 질문에 “예측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린 교수는 그 이유를 “노 대통령이 어떤 정치적 입장과 자세를 갖고 정상회담에 임할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의 정상외교 패턴이나 스타일은 다분히 국내정치적 이유에 좌우되기 때문에 예측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취지의 얘기였다.
워싱턴의 각종 싱크탱크에 속해 있는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 전문가들 사이에는 이런 류의 지적들이 넘쳐나고 있어 오히려 식상할 정도다. 워싱턴을 오고갈 때 “제발 시끄럽게 떠들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거친 표현까지 등장한다.
노 대통령은 한국일보 등 일부 언론사 외교안보 담당 논설위원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부시 대통령이 나를 좋아한다는 얘기를 간접적으로 들었다”고 말했지만, 워싱턴에서는 “양 정상은 그렇게 따뜻한 개인적 인간관계에 있지 않다”는 폄하가 더 강하게 들린다.
이 같은 워싱턴의 분위기를 감지해서인지 노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미국을 설득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는 자신의 ‘선제 발언’으로 뜻하지 않게 관심이 높아진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려는 말일 수도 있으나 뒤집어 보면 가능한 한 미국을 설득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도 읽힌다.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주미대사관 관계자들이 “이번 정상회담은 말을 듣기보다는 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밝히는 것도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한다.
문제는 말하는 방식인데 노 대통령이 참모들과 있는 자리에서는 미국에 대해 훨씬 더 격앙된 감정을 드러낸다는 얘기가 있고 보면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노 대통령은 또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뒤에는 매번 자신의 방식대로 외교를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불만을 토로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설득으로 신뢰ㆍ실리 모두 챙기길
한 시기 정권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진정으로 국익을 위하는 마음에서 ‘미국에 할 말을 하겠다’면 그런 대통령을 말릴 국민은 없을 것이다. 노 대통령이 미국의 대북 정책 및 전시작전통제권 이양 논란 등과 관련해 미국을 조리있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설득’하면서도 동맹으로서의 신뢰와 실리를 챙기는 특유의 ‘노무현식 외교’ 전형을 남겨주기를 기대해 본다.
고태성 워싱턴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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