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 데만 네 시간이 걸렸다. 전철에서 졸다가 갈아탈 곳을 놓치는 바람에 수원까지 갔다가 되돌아가느라.
서울 도심에서 전철로 동인천 역까지, 거기서 버스로 인천여상 앞까지, 거기서 다시 골목길로. 동인천 역 주변은 왜 그리 어지러운지. 방향감각을 잃고 헤매다 겨우 정류장을 찾았다. 만세! 이제 다 왔군. 그런데, 버스에서 내려 다시 헤맸다. 부아가 났다. 아니, 도대체 왜 이렇게 찾기 힘든 데서 전시를 하는 거야? 그것도 멀쩡한 전시장 놔두고 다 쓰러져 가는 빈 집에서.
죽은 집이 은밀하게 속삭이다
인천 중구 사동 30-53번지. 10년 넘게 독일에서 살면서 주로 유럽에서 활동해온 미술 작가 양혜규(35)의 국내 첫 개인전 장소다. 재개발을 앞둔 허름한 동네, ㄷ자로 꺾인 좁은 골목의 막다른 집. 푹 파묻혀서 밖에서는 보이지도 않는 집. 8년 째 방치돼 망가질대로 망가진 집. 문간방, 건넌방, 마루, 안방, 부엌을 갖춘 ㄱ자 형 작은 목조주택. 낮은 천정은 여기저기 주저앉고 구멍이 뚫렸다.
벽지는 벽에서 떨어져 흉물스럽게 덜렁대고, 유리창은 깨져서 달아났고, 집안은 온통 먼지구덩이라 엉덩이 붙일 데가 없다. 시멘트를 바른 좁은 마당의 수돗가. 물을 틀어보니 안 나온다. 그 앞에 놓인 버려진 냉장고 문짝에 안내문이 씌어있다. “멀리까지 와줘서 고맙다. 낡은 집이니 조심스레 관람해달라. 전시 설명서는 신발장 위에 있다.
전망대(마당의 장독대)에 올라가면 아이스박스 안에 마실 물이 있다. 관람 후에는 자물쇠를 잠가 문단속을 해달라. 화장실은 근처 주유소를 이용해달라”는 내용. 대문에 자물쇠가 달려있다. 알아서 열고 들어오라는. 자물쇠를 여는 비밀번호는 전시회 초대장과 인터넷에 띄운 안내문에 나와있다.
시간이 멈춰버린 이 죽은 집에 양혜규는 종이접기로 만든 작은 입방체와 거울, 조명을 설치해 특별한 공간을 연출했다. 더럽고 으스스한 분위기는 그대로 놔둔 채. 문간방. 바닥에 깨진 거울 조각, 종이접기 몇 개, 불을 켠 꼬마 전구가 줄줄이 달린 전선이 널브러져 있다. 벽에 기대어 선 거울이 그 풍경을 껴안고 은밀하게 무언가 속삭인다. 건넌방. 강한 스트로보 조명이 서 있다. 번쩍 하고 빛이 터질 때마다 시간과 공간은 정지된다.
순간 발광과 꺼짐의 반복에 집이 팔딱거린다. 힘겹게 숨 쉬는 것 같다. 부엌으로 난 쪽문을 향해 낡은 선풍기가 바람을 내보내고 있다. 스트로보 조명 탓인지 선풍기 날개는 아주 천천히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안방으로 이어지는 마루에는 바닥 가까이 시계가 걸려 있다. 숫자판 배열은 뒤죽박죽, 그러나 정확하게 돌아가는 시계.
안방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있다. 부서진 서랍장과 소파, 바닥에 뒹구는 옷가지와 이불 쪼가리. 작가는 여기에 천으로 뒤집어 씌운 빨래 건조대를 세워놨다. 접거나 펼 수 없는 결박 상태. 빨래가 나올 리 없는 빈 집의 안방을 차지한 빨래건조대. 두 팔을 쳐들고 다리 벌리고 선 사람처럼 보여 코믹하기도 한.
고향을 찾지 못한 홈리스의 멜랑콜리아
폐가의 이 낯선 입주자들이 만들어내는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작가 양혜규와, 그의 절친한 동료로서 이번 전시를 공동기획한 김현진은 “사회적 기능과 시간이 정지된 공간의 멜랑콜리아를 압축한 전시”라고 설명한다.
멜랑콜리아. 매우 복합적이고, 극히 개인적인 정서. 작가 양혜규에게 그것은 오래 동안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활동하는 데서 오는, ‘은유적’인 홈리스 상황과 연결돼 있기도 하다.
지난 10여 년간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이동하며 살아서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어느 곳에서도 고향을 발견하지 못하는, 그래서 결핍을 끌어안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들과 그 존재의 자리를 성찰하는 것이 그의 관심사다.
찾아오느라 힘들었다, 전시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에 양혜규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찾아오는 여정도 이번 전시의 일부다. 존재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할까. 잘 모르겠다고? 글쎄. 내가 원하는 것은 은밀하면서도 보편적인 소통이다. 전에는 딱 떨어지는 개념적 작업을 했지만, 지금은 손에 잡히지 않는 감성적인 것에 더 관심이 많다. 척 보면 ‘아하!’ 하고 고개를 끄덕일 만한 즉각적인 메커니즘이 아니라, 좀 더 반성적이고 관조적인 접근법 말이다. 자신을 비추고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 효과 같은.”
양혜규는 1994년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떠나 미국과 독일에서 공부했다. 유럽의 여러 나라 여러 도시의 주요 미술관에서 초대전을 했다.
국내에서는 아트선재센터의 블링크 전(2002), 에르메스 미술상 전(2003), 부산 비엔날레(2004) 등을 통해 작업을 선보여 왔으나 개인전은 처음이다. 경력이나 실력으로 보아 얼마든지 번듯한 전시장에 초대받을 만한 작가가 굳이 폐가를 택한 것은 이번 전시의 성격에 맞춘 것이지만, 제도적 틀과 관행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도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리 찾기 힘든 집은 아니다. 인천여상 정문에서 왼쪽 골목으로 학교 담장을 따라 5분쯤 걸어가면 나오는 오피스텔 뒤에 있다. 폐가라 전화는 없다. 지키는 사람도 없다. 전시는 10월 8일까지, 매일 오전 9시30분부터 밤 11시까지.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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