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 잔고가 부족합니까? 수수료만 내면 자산을 증명할 무기명양도성예금증서(CD) 사본을 제공해 드립니다.”
‘제3자 명의 CD’를 알선한 브로커와 이를 이용해 돈이 없으면서도 재정상황이 좋은 것처럼 꾸민 중소건설회사 100여곳이 적발됐다. ‘제3자 명의 CD’란 자금주 명의로 발행되는 일반 CD와 달리 자금은 증권사가 대되, 명의는 건설회사 등으로 돼 있는 편법 발행 CD를 말한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김경수)는 20일 건설사 등으로부터 수수료를 받고 증권사 자금으로 총 1조8,000억원 상당의 CD가 발행되도록 알선해 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전 증권사 직원 이모(43)씨, 사채업자 최모(50)씨 등 5명을 구속기소하고 56명을 불구속 또는 약식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이 CD를 이용해 자산을 부풀리는 분식회계를 한 혐의(건설산업기본법 위반)로 104개 중소 건설업체의 대표 및 법인 등 199명을 각각 벌금 300만~7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이번 제3자명의 CD발행 수사는 금융감독원이 실태조사를 한 뒤 자료를 검찰에 넘겨 준 2004년 12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7개월 동안에만 한정된 것이다. 특히 단속기간 7개월 동안 적발액수가 1조8,000억원에 달해 ‘제3자 명의 CD’를 이용한 건설업계의 관행적 분식회계의 심각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검찰에 따르면 알선 브로커들은 건설회사가 회계장부를 정리해야 하는 연말 전국의 건설회사에 팩스와 전화를 통해 ‘제3자 명의 CD’ 발행을 광고한 뒤, CD 1억원 당 평균 50만~100만원의 수수료를 받았다.
건설회사측은 이렇게 넘겨받은 CD사본과 발행사실 확인서를 증거 삼아 재무구조가 튼튼한 것으로 꾸민 회계자료를 건설협회에 제출, 시공능력평가(공사 입찰한도)를 높게 받아 냈다. 즉, 거액의 공사를 입찰 받아도 진행할 자금이 부족한 상태인데도 돈이 있는 것처럼 위장한 것이다.
한편 금감원은 이런 폐해에 따라 지난해 8월 제3자 명의 CD 발행을 전면 금지했으며, 지난달부터는 CD 등록발행제를 도입했다.
고주희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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