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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끝내 풀지 못한 사랑의 퍼즐 '사랑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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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끝내 풀지 못한 사랑의 퍼즐 '사랑의 역사'

입력
2006.08.1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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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 크라우스 지음ㆍ한은경 옮김 / 민음사 발행ㆍ9,500원

세상이 우리를 배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소설을 찾는다. 우리는 소설의 문맥 안에서 배신의 배후를 탐색하고, 그 고통을 관조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진실이라는 게 “내가 살아 남기 위해 내가 만들어낸 것”임을, 또 삶이란 ‘영원한 농담’같은 것임을 알게 된다. 배반의 시간을 처연히 바라보는 여유를 얻기도 한다.

니콜 크라우스의 장편소설 ‘사랑의 역사’는 배신하는 세상과 시간의 반생(半生)을 열쇠공으로 살면서, 끝내 ‘자신이 열고자 한 그 어떤 것도 열지 못한’ 한 남자의 인생 이야기다. 이루지 못함으로써 아름답게 이룩한 사랑 이야기이고, 자신의 이름으로 출간하지 못해 더욱 빛나는 한 편의 소설 이야기다.

소설은 팔순을 넘긴 남자 ‘레오 거스키’의 1인칭 서사로 시작된다. “내일, 아니면 그 다음날, 나의 부고 기사가 실린다면, 레오 거스키가 남긴 것은 쓰레기가 가득 찬 아파트뿐이라 기록되리라….”

작가는 10대의 레오와 그의 연인 ‘알마’가 어떤 사랑을 했고 어떻게 휘어지고 꺾였는지를 여러 인물들의 단속적인 시선을 통해, 아주 복잡한 그림 맞추기 퍼즐처럼, 전개해간다. 그 서사의 한 복판을, 레오가 좌절 당한 자신의 사랑을 위해 온 생애를 바쳐 쓴 소설 ‘사랑의 역사’ 이야기가 흐른다.(이 작품은 아주 독특한 형식의 액자소설이다.)

소설속 소설(레오의 ‘사랑의 역사’)이 쓰여진 과정, 그 원고가 친구(‘즈비’)의 이름으로 출간되는 사연, 그 소설에 반한 나머지 자신의 딸에게 ‘알마’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한 가족의 이야기 등이 이 작품의 서사를 다채롭고 치밀하게 이끈다. 그리고 독자들은 60여 년의 시간과 유럽 남미 북미의 공간을 종횡하며 실핏줄처럼 저류(底流)하다 한 지점에서 분출하는, ‘영원한 농담’ 같은 순간의 진실, 삶의 진실을 만나게 된다.

그 아름답고 커다란 진실 앞에서 레오가, 레오의 소설 ‘사랑의 역사’의 모든 등장인물과 독자들이, 그리고 니콜 크라우스의 소설 ‘사랑의 역사’를 읽게 될 우리가 스스로 겪은 크고 작은 배반의 상처들을 모두 위로 받기는 힘들지 모른다. 하지만 거기서 진실만큼 커다란 허공을 만날 수는 있을 것이다.

그 허공을 채워나가야 할 ‘영원한 농담’의 길 한 모퉁이에서, 뉴욕 문단이 ‘분더킨트’(wunderkindㆍ문학신동)라 부른다는 1974년생 이 여성 작가의 소설을 만난 것은 행운이다. 지금 나는,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닫기 무섭게 첫 장을 다시 펼치고 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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