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하지 않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뒤바뀔 수 있을까.
다음달 ‘4기 헌법재판소’ 출범을 앞두고 헌재가 내렸던 주요 사건의 판례 변경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9명의 헌법재판관 중 과반수인 5명이 바뀌는 데다 개혁 성향으로 분류되는 전효숙 재판관이 수장(首長)을 맡는 탓에 어느 때보다 그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점쳐진다. 다음달까지 퇴임하는 5명의 현 재판관이 보수 성향이었지만 이 자리를 채우게 될 신임 재판관들이 중도 성향으로 평가 받는 것도 가능성을 높인다.
이론적으로만 볼 때 양심적 병역 거부가 인정될 수도 있다. 헌재는 2004년 8월 양심적 병역 거부를 처벌하도록 한 병역법에 대해 재판관 7대 2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다음달 퇴임 예정자(퇴임 포함) 5명 중에서는 4명이 합헌 의견을 냈다. 다른 재판관들이 의견을 유지한다고 감안할 때 새 재판관들이 모두 위헌 의견을 내면 3대 6으로 위헌 결정이 날 수 있다. 헌법재판소법상 재판관 6인 이상이 찬성할 경우 위헌 결정 및 판례 변경이 가능하다.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을 금지한 선거법, 사면이나 가석방의 전제 조건으로 양심수한테서 준법서약을 받도록 한 준법서약제 등도 새 재판관들의 전원 동의가 있으면 위헌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다른 결정들은 이보다 손쉽게 뒤집힐 수 있다. 주민등록증 발급 시 열 손가락의 지문을 찍게 하는 지문 날인제는 신임 재판관 5명 중 4명이, 필수공익사업장 노동쟁의 직권중재회부의 경우 3명이 위헌 의견을 내면 판례가 바뀐다.
물론 이 모든 사안에서 임기가 남은 다른 4명의 재판관 중 일부가 시대 변화 등을 인정해 위헌쪽으로 의견을 바꾸면 판례 변경은 더 쉬워진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 이적표현물 소지죄는 당시 재판관 전원 일치로 합헌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신임 재판관들이 모두 위헌 의견을 내도 변경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재판관들이 법적 안정성을 고려한다면 다른 사안들에서도 판례 변경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헌재 관계자는 “과거 재판관이 교체되는 시점에 판례 변경을 요구하는 위헌 제청과 헌법소원이 종종 제기됐다”며 “이번에도 양심적 병역거부 등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사안들이 다시 한번 쟁점으로 부각될 수 있다”고 말했다. 3기(2000~2006년) 헌재에서는 10건에 가까운 판례가 변경됐다.
김지성 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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